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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축하

@고한

by 무누라

왜 생일을 축하해야 하는가? 태어남에 있어서 본인이 이바지한 바가 무엇인가? 8할은 임신 과정에 수고하신 부모님 몫이요, 남은 2할은 출산에 도움 주신 의료진 및 주변 가족의 몫이어야 함이 합당하다. 본인은 태 속에서 잘 먹고 잘 자란 수혜자일 뿐이다. 오히려 부모님을 비롯하여 본인의 탄생에 공이 크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엎드려야 함이 옳지 않은가? 어찌하여 작금의 시대에는 생일자가 가장 높은 위치에서 기고만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에 왜 축하받아야 하는가? 그 한 사람 한 해 동안 잘 살아낸 것이 축하받을 일인가? 삶이라는 게 예나 지금이나 만만치 않은 건 사실이나, 먹고 마시는 물질의 풍요로움만 놓고 보면 훨씬 살아내기 수월한 시대 아닌가? 옛날에야 생일에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저런 행사를 했다곤 하나, 지금은 환경이 아주 다른데 왜 여태껏 풍습이 이어지는가? 이제는 누구나 가진 생일에 대해 서로 ‘네 한번 나 한번’ 축하해주는 '정서적 품앗'이 말고는 무슨 의의가 있는가?


누구나 가진 생일이지만, 그 축하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가정환경, 시기, 날짜 등의 요인에 의해 사람별로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왕과 같이 환대받고, 누구는 생일이 없는 양 지나간다. 한 개인의 생일도 때에 따라 다르다. 차라리 국가에서 매일 생일자에게 같은 치하를 내리는 것이 적절할까? 지나치게 사회주의적인가? 여하튼 우리 사회가 생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도대체, 왜, 생일을 축하해야 하는가?


내 생일날이었다. 어머니께서 어른들 오셨을 때나 내오는 커다란 상에다 한가득 음식을 해주셨다. 김밥, 떡볶이, 오뎅 같은 분식에 잡채와 미역국도 빠지지 않았다. 그밖에 기억이 안 나는 게 죄송스러울 정도의 맛난 음식들이 흘러넘쳤다. 며칠 전부터 오지랖 떨며 생일을 알린 덕분에 많은 친구가 왔다. 저마다 각양각색의 선물들도 들고 와서 축하해주었다. 그보다 훨씬 전 내가 태어났던 그 날처럼, 엄마는 개고생하셨고 나는 왕 같은 대접을 받았다. 다행이라면 매번 생일마다 이러진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화려한 생일파티는 내 기억에 한 두번 밖에 되질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학업에 집중하는 시기가 될수록 내 생일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 12월 초인 내 생일은 늘 2학기 기말고사 기간과 맞물려서 파티 따위에 시간 쓸 여력이 별로 없었다. 다들 기말고사 준비에 열중하거나 다가올 시험에 한껏 예민한 시기인지라 파티를 열어 초대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소소하게 가족과 함께 케이크에 꽂은 촛불을 불며 지나간 듯하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그마저도 없이 지나갔다. 여느 때는 나름 시험공부에 열중한 나머지 옆의 친구가 내 생일임을 알려주기도 했다. 대학 때는 며칠이 지나서 생일이었음을 알아차린 적도 있었다. 그렇게 살아가며 생일에 대해서 무심해져 갔다. 학위를 이어가면서 좁은 인간관계에서 학업과 연구만 맞닥뜨리며 살다 보니 시나브로 감성적인 영역에서 무감각해졌다. 나의 생일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생일, 우리의 기념일, 세상의 많은 축하 받을 일들에 대해서 굳이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지성주의로 내 마음 한편을 얼어 붙인 채 살았다.


지금의 아내와 만나서면 이 부분이 큰 문제가 되었다. 연애하는 시절의 달콤함보다는 오랫동안 내안에 쌓인 무감각이 더 심하여, 생일 혹은 함께하는 기념일에 서로 챙기는 이것저것이 죄다 호들갑 떠는 것 같아 어색했다. 아내가 큰 공연을 하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빈손으로 갔다가 입구에 꽃장수가 즐비한데도 꽃 한 송이 안 들고 왔다고 혼이 났다. 그 정도로 무감각해져 있었다. 크게 화가 난 아내에게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 정도 풀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아내가 날 이해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더라도, 무감각하더라도 기념일에는 축하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더라도, 무감각하더라도 기념일에는 축하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이 없더라도 머릿속에서 강제로 끄집어내라고 했다. 곧 바로 수용할 순 없었다. 다만, 그녀가 만족한다면 억지로 하는 수 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억지 축하를 했다. 의식적으로 기념일을 기억하고 선물을 챙기며 축하했다. 그러한 훈련의 결과일까. 시나브로 나의 무감각이 깨어지고 냉랭한 허무주의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달력의 날짜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동그라미 처진 그 기념일을 그리고 그날의 주인공들을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따뜻해짐을 느꼈다.


왜 생일을 축하해야 하는가? 정서적 품앗이라고 평가절하했지만, 무엇보다 적절한 말이다. 이웃끼리 마음을 나누어 서로의 정서를 풍족하게 하는 것이다. 품앗이를 한다고 일이 늘거나 줄지 않는다. 생일을 축하한다고 생일이 늘거나 줄지 않는다. 그러나 품앗이를 하면 일이 수월해지고 서로의 관계가 풍요로워진다. 서로를 축하하면서 마음이 더 넉넉해지고 관계가 돈독해진다. 가진 것 없이 알몸으로 태어나도 그 순간 누구나 ‘생일’ 하나는 건진다. 오고 가는 생일 축하 속에 넘치도록 수지맞는 인생이 되길.






사진: UnsplashHamid Rosh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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