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는 미안함이 해소될 때까지 아빠는 오래오래 살 거야
어릴 적부터 아기들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사촌 동생들이 어릴 적부터 무척이나 예뻐해 주고 함께 잘 놀아주곤 했다. 결혼하기 전에도 와이프 조카들하고도 재미있게 잘 놀아서 나름 점수도 많이 땄었다.
그런데 정작 내 애들한테는 다른 아기들한테 대했던 것처럼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내 식구이기 때문에 어떻게 대해도 다 알아주고 이해해주겠지라는 막연한 안도감이 자리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첫째 애한테는 혼낼 때 버럭 하는 경우가 많아서 옆에서 보던 와이프가 왜 애를 중고등학생 꾸짖듯이 혼내냐먼서 크게 나무란 적도 꽤 많았다. 내가 생각해봐도 이제 초등학교 입학한지 2년째 되는 아이에게 너무 심하게 혼내는 것 같았다.
작년 여름에도 주말에 집에서 쉬려는데 큰 애가 빵을 먹다가 갑자기 나한테 한 조각을 던졌다. 아빠하고 모처럼 놀고 싶어서 장난을 걸었던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빵 부스러기들이 거실 구석구석 흩어졌다. 그걸 본 나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큰 애에게 버럭 소리 지르면서 꾸짖었다.
순간 큰 애는 빵을 입에 한 움큼 물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와이프는 큰 애가 너무 안쓰러웠는지 울면서 큰 애를 다독거렸다. 나 역시 갑자기 애가 아무 말도 못 하고 꾹꾹 참으면서 흐느끼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흐느끼는 첫째 애를 껴안고 같이 울었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시는 이렇게 버럭하고 화내지 않을게라고 다짐했다. 그 후로는 큰 애에게 버럭 하며 소리 지르는 일이 사라졌다. 딱 한 번 예외가 있었다.
작년 겨울에 병원에서 암 진단받기 바로 전날이 일요일이었는데, 병원 진단을 앞두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큰 애에게 게임하기 전에 공부한 교재들 정리하라고 잔소리했더니 큰 애는 무엇인가 서운했는지 말도 없이 혼자 훌쩍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왜 우는지 얘기도 안 하는 게 워낙 답답해서 한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큰 애는 모든 일들을 생생하게 다 기억하고 있었다.
집에 있는데 문득 큰 애가 이렇게 얘기한다. 와이프가 큰 애에게 영국에 가지 못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내가 암에 걸려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주었다.
가끔 내가 짜증 부리는 모습을 보면 큰 애는 옆에서 보다가 옐로 카드 메시지를 보낸다.
가족들과 함께 드라이브를 하는데 큰 애가 갑자기 의미심장한(?) 멘트를 보낸다.
회사에 출근하면 도통 집에 오지를 않고, 집안 일과 애들 챙기는 것은 엄마가 다하고, 막상 집에 있어도 애들과 살갑게 놀아주지도 않는 나는 어찌 보면 애들에게는 낙제점을 받은 나쁜 아빠였다.
순수한 애들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는 교훈처럼 다가온다.
올해 영국에 간다고 큰 애는 영어학원 수업을 정말 열심히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집에서 큰 애가 영어학원 온라인 수업 들으면서 열심히 영어문장 따라 읽고 있는 모습을 뒤에서 보면 마음이 저려온다.
갑작스러운 암 선고로 인해 영국에 못 가게 된 지금의 상황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큰 애에 대한 마음의 채무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그래서 지금의 미안함을 만회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하게 된다.
우리 작은 애도 몇 개월 사이에 말이 유창해져서(?) 그 새 많이 컸구나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집에 다니는 우리 애들에게 좋은 추억거리와 선물들을 많이많이 남겨줘야 하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지금 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야만 한다.
우리 큰 애가 미술학원에서 만든 주옥같은 작품들을 모아서 디지털 전시회를 열어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