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이 왔어요
"계란이~ 왔어요! 맛있는 계란이 왔어요~
계란말이 하나가 단돈 천원!"
계란말이 하나에 천원이면 너무 비싼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잠시 계란(말이)장수는 손님들 식판 위로 계란말이 두세개를 턱 턱 내려놓으셨다.
"자,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배고프면 교장실로 와서 컵라면이랑 초코파이도 먹어야 합니다~!"
그렇다. 계란말이 하나에 천원이라는 가격을 매긴 계란 장수는 21세기판 봉이 김선달이 아닌..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이다.
그리고 여긴 열세명의 아이들과 열명의 교직원이 함께 밥을 먹는 급식실 되시겠다.
"점심은 어떻게 먹어요?"
이 학교에 처음 와서 부장 선생님께 여쭤본 첫 질문이다.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일과 중에 점심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는 건 매한가지다.
다소 큰 규모의 시내 학교에서만 근무하는 나로서는 밥을 먹는 인원이 채 서른명도 안되는 학교 급식은 어떤 것일까 상상이 가질 않았다.
학교 뒤에 텃밭이 있던데..
설마 쉬는 시간에 상추 뜯고 고추 따서 밥 지어다 먹는 건가..
물론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낭만이 있겠으나, 시골 학교라고 뒷산에서 산딸기 따먹고 도랑에서 가재 잡아 구워먹고 그렇게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규모만 좀 작을 뿐이지 행정이나 시설적인 측면에서는 시내 학교와 크게 다를 건 없다.
다만 급식은 인원이 적기 때문에 학교에서 직접 조리해서 먹지는 않고, 차로 5분 정도 떨어져있는 초등학교에서 급식을 받아 배식만 한다.
점심시간 가사실 겸 급식실로 들어가니 배식대 위에는 이미 반찬이 놓여진 식판이 질서 있게 줄을 맞춰 있었다. (인원이 적으니 가능한 서비스라고 할까.)
나도 식판 하나를 들고 선생님들이 모여 계신 테이블에 앉아 숟가락을 떴다. 교직원 테이블은 창가쪽 첫번째 테이블이라 창을 등지고 앉으면 열세명의 아이들이 밥을 먹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다들 먹는 데 열중인 모양새였다.
"되게.. 조용하네요?"
내 목소리가 조용한 이 공간에 방해물이 될까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전임지에선 한때 급식을 먹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점심 시간 만이라도 소음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수백명이 앉아서 식사를 하는 공간이니만큼 당연히 왁자지껄한 소리와 모양새는 여기가 급식실인지 시장통인지 헷갈리게 했다.
먹는 모습만 바라봐도 배불러야 진정한 사랑일텐데, 정작 그동안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1학년은 김치도 잘 먹네? 너희 선배들은 김치 안 먹었는데 말야."
"아니에요! 저 김치 잘 먹어요!"
"참나, 그게 김치 가지고 온 거냐?"
교장 선생님은 이번에는 김치 장수로 변신하셔서 아이들과 장난 섞인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누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 안 먹는지도 꿰차고 있는 참으로 프라이버시 없는 급식실 되시겠다.
나도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내 식판에 놓인 김치를 한쪽 먹었다.
음...! 왠지 아이들의 반응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그새 식판을 비운 아이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빠짐없이 "잘 먹었습니다!"를 외치며 급식실을 나갔다. 참, 별거 아닌 말인데 아이들의 그 한마디 한마디가 조촐하고 소탈한 이 공간을 풍족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후 퇴식구를 지나 나오려는데 낯설지만 익숙한 물건이 눈에 띤다. 쇳주전자다. 들어보니 묵직한 것이, 안에는 따끈한 보리차가 가득 채워져있다. 정수기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따뜻한 보리차까지 한잔 마시니 속이 더 든든해졌다.
급식실 문을 나서며 나도 아이들처럼 한마디 외쳤다.
잘 먹었습니다!
거 참, 알면 알수록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매력적인 학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