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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Oct 25. 2016

이곳에 겨울이 오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북 52도 30'02"에 위치한 곳이다.

봄, 여름, 가을은 짧고 겨울이 긴 곳이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수도이며  175개의 뮤지엄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이곳에 일 년간 비가 내리는 날과 비슷하다.


(믿기 어렵겠지만) 10월이 시작되면서 거의 매일 비가 내리고 있다.

보슬비가 내리고 때로는 소낙비처럼 큰 비가 내리기도 한다.

오전 혹은 오후 내내 비가 내리는 날도 가끔씩 있다.


10월 평균기온 10도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2도를 하면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누가 뭐래도 나는 겨울의 이 도시가 싫다.

따뜻한 불빛도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고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차가운 도시는 겨울이 되면 사람을 집구석에 쳐 박아놓고 바깥 세상에는 나오지 못하게 한다.


추운 건 둘째치고 해가 너무 일찍 지는 건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되지 않은가?

아직은 10월이지만 곧 머지않아 오후 5시가 되면 이 도시는 어둠에 완전히 잠식된다.


잠식되다 : 누에가 뽕잎을 먹듯이 점차 조금씩 침략당하여 먹혀 들어가다.라는 단어의 설명처럼

이 도시는 오후 3시가 되면서부터 해가 서쪽 어귀에서 달랑거리고 있다가

4시 반쯤  도시에서는 (알아볼 수 없는) 지평선으로 넘어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잠시 책장 속에 책들의 이름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이

혹은

모카포트에 커피를 끓여내는 사이

오늘의 해는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다.

이 모든 것은 순식간이다.

곧 해가 지겠구나,라고 생각하던 찰나의 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

이 도시는 어둠 속에 잠겨 검은 물속에서 찰랑이고 있다.


이곳에 긴 겨울이 시작되면

레드와인을 꺼내 마실 시간

스페인에서 건너온 값이 싼 클레멘타인을 먹는 시간

읽지 않던 소설책을 읽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괜히 감상 젖은 밤이 지속되고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 매일 저녁 과식을 하게 되는 계절이다.


오늘은 태어나 처음으로 루마니아 산 와인을 먹어보았다.

:산딸기와 자두향이 나고 풍부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낸다고 적어놓은 양 한 마리가 그려진

와인 한 병을 사 왔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다행이다.


이 나라는 와인 셀렉팅도 참 못한다.

역시 맛과 멋과는 먼 나라답다.


남편이 출장을 갔고

평소와 별다를 바 없는 일상이지만

아주 오랜만에

나는 와인 한 병을 마시며

혼자였던 지난 시간을 되새기며 밤을 보내고 있다.

입 안에서 산미가 강하게 느껴지는 이 와인이 오늘 밤 나를 즐겁게 해줄 것 같다.

9,99달러를 지불한 아이튠즈 음악도 이 시간을 반짝이게 한다.



alles g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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