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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Aug 29. 2016

노란 트럭의 등장을 염원하며

오후 6시부터 9시 사이 당신의 택배가 배달될 예정입니다.

오후 6시부터 9시 사이 당신의 택배가 배달될 예정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러니까 나는 꼬박 3일을 택배를 기다리다 바람맞아 망부석이 되어버린 것 같은 그 전설의 여인이 됐다.

택배를 핑계로 운동하러 피트니스 센터에도 못 가고 낮부터 종일 집에서 집지키는 개였던 지난 3일 동안은

베를린이 뒤늦은 여름 폭염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제법 견딜만했는데 오늘은 낮기온이 32도가 되니 이 집은 집이 아닌 고문의 공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과학시간에 배운 이론을 써먹어보자면 여름 낮 기온은 1시에서 3시 사이에 기온이 가장 높은 시기라 하지만 베를린의 절정 기온은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 밤 8시가 되어야 온종일 품었던 열기도 사그라든다. 

더워서 미칠 것 같아 어디든 가고 싶은데 택배는 안 온다.

그냥 나가버릴까, 피트니스 클럽은 시원할 텐데 가서 운동이나 할까 하고 고민하는 순간

sms 메시지 알림 소리가 울린다.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나서부터는 메시지 올 일이 별로 없지만 광고 문자라던가 데이터를 거의 다 써갈 때쯤 통신사에서 친절하게 보내주는 알림 메시지 - 너의 데이터는 거의 다 사용했으니 돈을 더 내고 충전해서 사용하는 건 어떠니- 따위가 오고는 하는데 요즘은 DHL에서도 배송 알림 서비스를 하고 있다.


25일 아침 

아마존에서 슬로우쿠커를 구입했는데 나는 프라임 회원이라서 배송이 꽤 빠른 편이다.

보통 하루, 늦으면 이틀 정도 걸리고는 하는데 만약 오전 11시 전에 주문을 하게 되면 당일 배송도 가능한 물건들이 있다.  요즘 남편이 일 때문에 밥도 제대로 챙겨 먹어서 영양가 있는 요리들을 찾아보다가 신박하고 유용하다는 슬로우쿠커를 알게 되고 사용해보고자 바로 주문에 했다. 주무하던 날은 분명 나는 이 슬로우쿠커로 어떤 요리를 하지? 밤에 물건이 도착할 테니 재료를 지금 다듬어 놔야 하나?라고 부푼 기대에 종일 택배를 기다렸지만 오늘 밤 DHL배달원은 우리 집 오는 걸 잊어버렸나 보다.

 우리 집 담당 배달 아저씨는 바짝 마른 몸에 금발을 가지고 있어서 첫인상은 조금 차갑긴 하지만 두어 번 택배를 받아보면 너무도 선한 미소에 이토록 친절한 낯선 독일인을 만나본 적이 없을 정도로 너무너무 좋은 분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분은 절대로 벨도 안 누르고 그냥 지나치실 분이 아닐 텐데... 요즘 젊은 새내기 배달원이 온 것 같던데 아마도 그놈이 우리 동네 주말 당번이었나?

홀로 모노드라마 한편을 완성하며... 그렇게 당일 배송의 짜릿한 맛을 보지 못 하고 하루가 지났다.  

독일에서 당일배송은 아직 무리야.

아마존에서 초고속으로 일을 처리한들 이 느림보 배송 서비스는 너희들 마음 같지 않을걸

역시 당일 배송은 무리였어.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다음날 다시 어제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택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건 뭐 데자뷰인가?

왜? 나는 또 어제와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어제의 모습처럼 얌전히 택배를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역시나 오늘도 택배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배달 예정시간 9시를 지나고 나면 나는 운동을 가야 하는 시간도 놓치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갈 수도 없는 애매한 시간 속에서 뭘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꽂힌 Konig Ludvig  흑맥주를 너무 마시고 싶은데 마트는 이미 문을 닫아버렸단 말이야!

슬로우 쿠커를 기다리고 있는 냉장고 속 소고기는 어쩌란 말이냐!


이틀을 꼬박 집지키는 개가 되었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아마존 고객센터에  글을 남겼다.

/나는 당일 배송 기대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 물건을 받지 못했다. 내 물건은 어디로 간거니? 빠른 조취를 취해주렴. 고맙다. 안녕/

라고 적어놓고 다음날이 되니 아마존에서는 물건은 이미 나갔는데 왜 배송이 안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새로운 물건을 다시 보냈다고 알려주며 혹시나 예전 물건이 배달되었으면 반송해달라는 친절한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하-- 그래 역시 글로벌 기업 아마존은 서비스도 신속하구나. 이 정도는 해줘야 한국사람들 급한 성질머리를 달래줄 수 지 아무렴...

하고 나는 토요일을 그렇게 집을 지키며 오매불망 DHL의 노란색 트럭을 기다렸지만

불안한 나의 예감은 어이없게도 딱 맞아떨어졌다. 

이쯤 되니 뭐랄까 DHL 택배한테 3일 동안 농락당한 기분이랄까? 외출도 못 하고 창밖을 예의 주시하며 온종일 삼일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9시가 되면 아, 오늘은 글렀어. 오늘 안 왔으니 내일 오전에는 오겠지? 라며 스스로 희망고문을 했던 시간들은 일요일 밤까지 계속되었고

월요일에는 올 거야. 라며 월요일도 나는 계속해서 집을 지키고 있다.

나는 집밖으로 나아가고 싶다. 격력할게 양팔을 흔들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 문을 나서고 싶다.

언제올지 모르는 노란 택배차 따위는 신경쓰지 않은채 자유로이 길을 누비고 싶다.




왜 나는 외출도 못 하고 노란 차를 기다리고 있느냔 말이야! 자유로워지란 말이다! 

(아, 택배의 노예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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