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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오 Feb 09. 2019

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된 건 참 행운이다.


아주 작고 동그란 아이의 머리를 만지고 있다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의 작은 손, 발 그리고 보드라운 목 뒷덜미, 말랑한 손등까지 몸 구석구석 쓰다듬으며 잠을 재우는 이 순간에는 난 행운을 갖고 있음에 확신한다.

부모라는 것은 어려운 자리였다.

자식을 향한 사랑, 보람, 의무 처럼 부모로서 가져야 하는 것들을 요구하기 때문이아니다.

부모는 한 사람의 삶을 보살피고 일정기간 책임져야하며 감정을 다스리고 기쁨과 슬픔을 가르쳐 줘야한다. 삶이 즐겁든 그렇지 아니하든 본인의 삶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모든 순간이 내가 살아오던 나와는 다른 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피곤함이든 그 어떤 것이든 말이다. 본능과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내가 부모로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면 나는 아직 철이 없는 것일까?
나의 마음과 머릿속 생각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세상을 거닐고 있는데 보육자인 나는 하루종일 아이를 바라보고 아이의 뒤를 걷는다.
아이가 다쳐도, 잘 먹지 않아도, 감기로 아파도 모두 나의 잘못인것 처럼 책임감과 죄의식을 얹고 살아간다.

 어느 해, 이 계절 이맘때 나는 런던 골목들을 걸으며 워터루의 큰 쇼핑몰 어느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 나는 낮잠에서 깬 아이와 손을 잡고 약국에 들러 코감기 약을 사고 유기농 마트에 들러 장을 보며 돌아왔다. 깜깜한 거리와 찬 바람에 혹여나 아이가 아플까 걸음을 재촉하며 뛰다시피 집으로 돌아와 유모차에서 아이를 내려놓고 들쳐 안아 손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거실에 들어서니 여기가 누구네집인가 제발 우리집은 아니면 좋겠다는 심정이 들만큼 난장판인 집을 마주하며 난 오늘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를 두어번 반복하면 하루가 지난다. 아이가 자는 시간이 오롯이 날 위한 시간이라 아껴서 나하고 싶은 것들만 하고 싶은데,
밀린 설거지 장난감 정리 매일 쌓이는 빨래는 내 눈을 잡고 내 몸을 움직이게 한다.

부모는 고단한 삶이다. 그렇지만 행복한 삶이기도 하다.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은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고 상상할 수도 없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 같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삶에는 늘 존재하는 형이상학적인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사람.
자식의 아픔도 슬픔도 내가 느끼는 것보다 곱절은 진하게 만져지지만 그것도 부모의 몫이다.


어느날 나는 부모가 되었고,
나의 손길에 울고 웃는 아이가 생겼다.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생명이 나를 붙들고 있다.
살지 않아도 괜찮았던 나는 그 아이에게 삶을 받았다.

어쩌면 내가 아니라 네가 나를 키워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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