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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Mar 24. 2021

14. 이태원으로 도망치다

한국에서 가장 낯선 곳으로

강남에 없는 게 어디 있어?


그렇게 사랑해마지 않았던 강남을 피곤하다고 느끼게 되었을 때에 나는 일상을 지속하는 것 자체에 큰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너는 어쩜 그렇게 열심히 사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응원한다'는 말을 자주 해주었다. 내가 '열심히' 살아가게 된 것에는 물론, 나의 삶을 충분히 살아야 한다는 나의 좌우명 때문이기도 하다. 훗날 되돌아보았을 때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내가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마음이 동하는 일을 찾게 되거든 반드시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기대하고 바랄 수 없는 나의 환경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나는 더욱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살고자 했을 뿐인데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에게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 좋은 자극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사는 것이 늘 즐겁지만은 않다.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영역과 울타리를 벗어나서 새로운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에 연속해서 뛰어들고 도전하는 일에는 항상 두려움과 걱정이 함께 한다. 그러나 내가 결국 그것을 정복해내고 어떤 성취를 이루어 냈을 때에는 참 기쁘다. 


항상 힘들어하면서도 해볼 거라고 일을 저질러 놓고, 기를 쓰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누군가 내 곁에 머물면서,


너 참 멋있다.
널 존경한다.
너 정말 대단하다.
너를 본받고 싶다.
잘하고 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걸.
언제나 널 응원한다.


와 같은 응원의 말을 수시로 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기 강박적이고, 늘 내가 만든 결과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매 순간을 의심하는 나에게, 이런 낯간지러운 응원의 말을 매일 같이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일 것이다. 


어쩌면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나 스스로를 무리하다시피 몰아붙이면서도 나를 지탱하고 여기까지 잘 해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당히 쉬면서 할 줄을 몰랐던 나는 새카맣게 타버렸던 것이다. 무기력하고 지친 나는 더 이상 여행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여행하고 싶어 했다. 프랑스로, 꼭 프랑스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산 건너 바다 건너 또다시 아무도 나를 모르는 땅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면 또 거짓말 같이 힘이 날 것 같았다. 


마음이 답답하고 지긋지긋한 권태감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나는 이태원으로 향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가장 이국적인 곳으로. 나는 도망쳤다. 처음으로 이태원에 왔다 간지 꼭 5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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