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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Apr 02. 2021

23. 방랑(3)

서울 한복판의 앤틱 거리

아무 생각 없이 구경하며 걸어 다니다 보니 어느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카페에서 음료를 하나 주문해서 2층으로 올라가 가장 큰 테이블에 앉았다. 그 카페는 한쪽 벽면을 제외하고는 전부 통유리창이어서 바깥 풍경을 보기에 좋았다.


그런 창문이 있으면 뭔가 아름다운 풍경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파헤쳐져 황토색 흙이 다 드러나 있는 커다란 빈 땅이었다. 커다란 아파트 단지 옆에 비어 있는 저 공간의 사연이 궁금했다. 근처 부동산 사무실에서 내걸어 놓고 있는 광고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간단하게 허기짐을 해결하고 한 시간 정도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혼자 앉아서 그 황무지를 바라보다가, 다시 나가서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슬슬 돌아갈까 했지만 아직 못 본 것들이 많은 것 같아 아쉬워서였다. 동빙고의 카페에서 나와 길을 건너보니 공사가 한창이었다.


작은 빌딩이 지어지고 있던 대로변을 따라가 보니 한쪽 코너에 '앤틱가구거리'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따라서 가보았는데 이번 길은 다시 완만하게 올라가는 길이었다. 앤틱가구거리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이 있었다. 대사관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이곳을 특별히 정비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앤틱가구거리는 아주 크고 깔끔한 거리였다.

이런 정원 장식용 조각들을 사가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길을 따라서 유럽의 가게처럼 예쁜 차양을 달고 있는 작은 가게들이 주르륵 늘어서 있었다.  빈티지 가구, 앤틱가구와 같이 덩치가 큰 물건부터 그리고 빈티지 소품과 그릇 같은 작은 물건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주말 오후인 데다가 저녁이어서 그랬는지 문을 열어놓은 가게는 별로 없었는데 길거리 곳곳에 프랑스식 큰 정원에서나 쓸 수 있을 것 같은 아주 커다란 석조상들이 세워져 있기도 하고, 커다란 석조 분수대도 있고 별의별 물건이 다 있었다. 이런 것들이 서울 한복판의 길거리에 무심하게 덩그러니 놓여있다니.  

오일 케어를 받고 바깥 바람을 쐬고 있는 나무의자들

빈티지와 앤틱의 차이점이나 어떤 제조사의 물건이 유명하고, 어떤 물건이 더욱 값지고 귀한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나는 그런 오래된 것들이 좋았다. 나보다 먼저 태어나 긴 세월 동안 존재했던 것들.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초월하는, 내가 일생동안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초월하는 것들을 이다.  


그 물건들은 조용히 그 자리에 있으면서, 때로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수많은 사람과 시간과 함께 살아오며 새겨진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다. 남이 쓰던 것을 누가 사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뭔가 요즘 새로 만들어지는 것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깊이에 나는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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