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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Apr 05. 2021

26. 한남동 등반기

지도앱을 믿지 말 것

지도에서는 한남오거리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한남오거리에서 내리자 저 멀리 작은 주택들로 빼곡한 높은 언덕이 하나 보였다. 그 사이로 교회 지붕이 보였고, 이슬람 사원의 지붕도 보였다. 독특한 광경이었다.


나는 큰 의심 없이 지도에서 알려주는 대로 걸어갔다. 처음에는 좋은 길만 나왔다. 대사관이 있고, 동빙고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큰 주택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도는 나를 점점 수상한 길로 안내하고 있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라 하여 걷다 보니 평지가 끝나고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이 나왔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절대로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로 펼쳐져 있는 계단의 모습에 약간 불안했지만 돌아서 다른 길로 갈 시간은 없었고, 초행길이라 헤매기라도 하면 늦을 것 같아서 그대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결정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때는 3월 중순이었고, 날씨가 오락가락했지만 아직 쌀쌀하기도 하고 더운 날씨는 아니었다. 골목길에는 아래에 있던 멋진 저택과 달리 낡고 허름한 집들이 엄청난 경사 위에 촘촘하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그 날씨에 땀을 흠뻑 흘리면서 좁고 험난한 골목길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언덕길이 너무 길었다. 계단이 있는 곳도 있었고 없는 곳도 있었다. 아마 그 날 구두를 신었던 것 같았던 것 같은데 경사가 너무 심해서 헉헉 거리며 걸어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화가 났다. 


'대체 네이버나 카카오는 왜 지도에서 경로 안내를 할 때 지형 데이터는 반영하지 않는 거지?'


만약 내가 네이버나 카카오에서 지도 서비스를 담당한다면 보행자에게 최적의 경로를 안내할 때 반드시 지형의 높낮이를 고려하도록 만들 것이다. 골목이다 보니 방향도 헷갈려서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를 반복하며 겨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나마 올라오고 나니 크고 평탄한 길이 나와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길이 우사단로였다. 당시에는 그냥 그렇구나 했는데 무척 독특한 지명이다. 그러고 나서 조금 더 걸어 집주인이 알려준 곳까지 올 수 있었다. 


힘들기는 했지만 최적의 경로로 오긴 해서 약간 시간이 남았다. 나는 처음 와본 길이니까 대로의 끝까지 한 번 걸어가 보기로 했다. 지난번에 못 본 동네기도 하고 내가 이 동네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니까 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우사단로는 조금 한산하고 고도가 있어서인지 바람이 조금 차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거리 분위기도 약간 스산해 보였다. 내가 저녁에 와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길거리를 따라서 독특하고 궁금해지는 가게들이 많았다. 공방 같이 작업실로 보이는 곳들도 많았다. 그렇게 일직선으로 쭉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눈 앞에 이슬람 사원 입구가 나타났다. 


그렇다. 한남오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보았던 그 높은 언덕을 방금 내가 걸어서 올라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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