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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Apr 06. 2021

27. 재개발과 사람

뜻밖의 인터뷰

집을 같이 보러 와준다고 했던 친구는 차 시간이 맞지 않아서 늦는 바람에 나 혼자 집을 보게 되었다. 집주인이 집까지 내려오는 길을 전화로 알려주었는데 맙소사, 또 경사를 조금 내려가서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대문을 열어주며 나를 맞이해준 집주인은 여성분이었는데 미국에서 며칠 전에 귀국했다고 하였다. 그분이 안내한 방은 또다시 반계단 정도 내려가야 나오는 작은 방이었다. 이곳의 지대는 높았지만 다른 건물 등에 가려서 햇빛은 절대 들어오지 않고 가스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전기로 모든 일을 해야 하는 아주 작은 방이었다. 


그분은 이전에 외국인 여학생이 세입자로 지냈다는데 최악이었다며, 집도 엉망으로 쓰고, 정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나갔다고 처음 보는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러면서 이따금 내가 궁금한 것을 조금 묻고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방의 상태는 솔직히 사람이 인간답게 살고자 한다면 피해야 하는 크기와 구조였다. 주방을 분리하는 여닫이 문이 있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단칸방이었다. 그런데 방의 외부에 화장실이 있었고 이것의 크기는 상당히 컸다. 


아파트처럼 요즘 원룸에는 잘 없는 욕조까지 설치가 되어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화장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이태원에서 찾을 수 있는 저렴한 월세방의 화장실의 상태가 정말로 형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형편없는 화장실은 삶의 질을 나쁘게 한다. 이 동네에서 임대를 주는 사람들은 단지 재개발을 기다릴 뿐, 임차인이나 건물의 상태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집주인은 나를 데려다 놓고서도 그 전 세입자가 얼마나 형편없이 방을 사용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청소를 계속하였다. 그나마 계속 치워서 이 정도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분은 내가 냉장고를 열어보자 고드름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되려 나에게 "이거는 왜 이러는 거예요?" 하고 물었다. 냉장고는 오랫동안 문을 여닫지 않고 사용하지 않았는지 냉동고에는 고드름이 가득했다. 전원을 켜 둔 채로 너무 오랫동안 아무것도 넣지 않고 사용하지 않으면 냉동고에 얼음이 생긴다고 알려드렸더니 "아 그렇구나" 하셨다. 청소 방법도 내가 알려드렸다.


집주인은 이 동네에서 재개발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을 때부터 투자를 위해 이 건물을 매입한 듯하였다. 특별히 묻지 않았는데 내가 본 지하층 외에도 1층, 2층이 더 있었는데 투자하려고 샀는데 사람이 지내지 않으면 건물이 관리가 안되고 너무 엉망이 되니까 세입자를 받아서 유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대뜸 물었다. "왜 이태원에서 살려고 하는 거예요? 별로 노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하였다. 별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그냥, 이 동네가 좋아서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분은 왜 젊은 사람들이 여기에 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절대 살지 않을 것 같은 집인데 내놓으면 굳이 들어와서 산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은 나에게 계약하라고 강요 안 하니까 계약 안 해도 된다고 굉장히 쿨하게 말하였다. 지금 보면 이분도 전형적인 한국인은 아니었나 보다. 


왜 이런 집이라도 선택하려고 하겠는가, 그저 살아보려고 발버둥 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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