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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Apr 16. 2021

36. 경리단길

나의 두 번째 아지트

나는 항상 이웃이 없이 지내왔다.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대학 근처에 형성된 자취촌에 모두가 살았으니 언제나 가까이에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새벽에 집 앞에서 친구를 만나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 한 두 캔을 마시기도 했고, 공강 시간이 되면 서로의 자취방에 놀러 가서 같이 밥을 해 먹거나 과제를 같이 하는 등, 하루의 어느 때든 부르면 나가서 어울릴 수 있는 이웃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같이 있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당장 고향 친구들이나 대학교 동기들만 해도, 졸업하고 나서 각자 자기 먹고사는 일에 바쁘지 일 년에 몇 번이나 볼 일이 있는지. 아니 이 경우는 내가 유독 정신없이 살아서 더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사실 언제든지 누가 먼저일 것 없이 생각나면 연락하고, 만나자면 만날 수 있는데 날이 갈수록 어느 누군가에게 힘을 쏟고 관계라는 것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게 느껴진다.


내가 이태원으로 집을 옮기기 한 달 전쯤에 대학 동기 Y가 경리단길로 이사를 했다.


Y는 종로에서 회사를 다녔고 부모님이 있는 경기도에서 출퇴근을 하고는 했었는데, 한 일 년을 그렇게 다니더니 경기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회사와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고 싶어 했다.


Y는 내가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 나와 한 학기를 같이 지낸 유학 메이트이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가 이태원에서 살게 되었다고 알렸을 때부터, 이태원에서 살아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혼자서 산 지 제법 오래되어 이런 생활이 익숙했는데 Y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사 직후에 Y는 이렇게 넓은 집에서 혼자서 지내게 된 것은 처음이라며 초반에는 외롭고 적적하니 나에게 자주 좀 놀러 와 달라고 했었다. 그래서 한동안 자주 경리단길에 다녔다.


그 후에 내가 녹사평 인근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우리는 이웃이 되었다. 이 동네가 좋아서 이사 온 것이기는 하지만, 대학교를 같이 다녔고 무엇보다도 어려웠던 유학 시절에 함께해서 어딘가 모르게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Y와 동네 이웃 주민이 되어서 나는 기뻤다.


학교를 졸업한 지는 벌써 꽤 지났어도 다시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로 돌아온 것 같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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