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남산 산책로
가끔 산책 모임이 이루어질 때면
경리단길은 경사진 지형이라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남산과 가까운 곳이라서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육교를 건너 남산 산책로를 따라서 산책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조금 부지런을 떤다면 새벽에 일찍 나와서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체력이 허락한다면 작정하고 등산을 할 수도 있었다.
Y는 이쪽으로 이사 온 뒤로부터는 산책하는 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혼자 다니기에는 심심해서 나와 산책을 같이 하기를 바랐는데, 행정구역 상 Y와 나는 둘 다 이태원동에 살았지만 걸어서 다니기에는 은근히 거리가 있는 위치여서 산책 모임이 자주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드물게 한 두 번씩 같이 산책로에 오른 일이 있었는데 남산 산책로에 가면 언제든지 운동하거나 개를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Y는 이렇게 산책 나온 개들을 구경하는 일을 좋아했는데, 지나가는 견공들을 볼 때마다 귀엽다는 말을 끊임없이 했다. 물론 나도 그 옆에서 앵무새처럼 귀엽다는 말을 같이 하고는 했다.
우리의 산책은 사실 운동보다도 이 귀여운 친구들을 보는데에 더 큰 목적이 있을 수도 있겠다,
코로나 19 이후로 실내보다는 그나마 야외에서 활동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항상 사람들이 자주 오는 곳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동네에 살게 된 뒤로부터 평소에도 길거리 아무데서나, 어느 시간대이거나 상관없이 목줄을 차고 주인을 강제로 산책시키는 크고 작은 개들과 마주치게 되는 것을 보면 원래 이 곳 사람들은 집에 네 발 달린 친구들을 식구로 많이 두고 있어 필수적으로 산책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친구들에게 남산은 아마 최적의 놀이터일 것이다. 서울시내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답게 산책로에서는 자녀를 동반한 외국인 가족들도 꽤 보인다.
아파트와 같은 주거형태를 보편적으로 가지게 되는 한국에서는 실내에서 생활하기에 용이한 소형견들을 주로 가족으로 두는 반면에 외국인들은 덩치가 큰 대형견을 가족으로 선호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커다란 개들이 돌아다니는 남산 산책로의 풍경은 어쩐지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이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서울을 홍보할 때 서울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남산타워와 남산의 이미지가 자주 활용되는데 막상 서울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로 보이는 이곳에 와보면 대단히 이국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