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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Apr 25. 2021

41. 김치와는 어색한 사이(2)

방구석 미식회

하지만 일련의 삶 속에서 특정한 시기, 특정한 장소에서 먹었던 그 순간 나에게 감동을 주었던 음식들은 있다. 그런 음식은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도 계속 생각나고 먹고 싶어 진다. 나는 그런 음식들은 나의 DNA에 새겨졌다고 말하고 다닌다.  


나의 DNA에 새겨진 음식들은 이런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뉴질랜드에서 먹었던 엄청 맛있었던 감자튀김과 피쉬앤칩스, 대학교 3학년 프랑스 유학 시절, 처음 봤을 때는 문화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내가 찾아다니는 바게트 샌드위치, 하끌렛뜨, 적양파가 들어간 신선한 수제버거, 그리고 유럽식 건조 햄(소시송, 살라미 등).


먹성부터 뭔가 한국에 부적합한 나에게 이태원은 천국이 아닐 수 없다. 음식은, 그 음식이 태어난 나라의 많은 면모를 담고 있다. 여러 나라의 음식을 먹으면, 물론 먹어서 기분 좋을 뿐만 아니라 내가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지 벌써 한참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외국에서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 정말로 다른 나라에 가지는 못하지만 프랑스가 그리우면 프랑스식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시켜 먹고, 기분전환이 하고 싶으면 이탈리아식으로, 미국식으로 먹고 싶으면 미국식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지만, 한국에서 찾아보기는 어렵거나 비싼 음식들을 이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때로는 현지에서 먹었던 것보다 더 훌륭한 음식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코로나 19 이후로는 주변의 가게들도 배달에 열심히인 덕분에 날이 갈수록 메뉴가 다양해지고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


나는 이렇게 나 혼자 방구석 세계 음식 미식회를 열면서 이태원 라이프를 즐겼다.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은 좀 어렵다 보니 대부분 배달로 어떤 매장의 음식을 먼저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길을 가다가 나중에서야 '아 그때 음식 시켜 먹었던 곳이 여기구나' 한다. 이사를 오고 난 뒤로부터는 배달앱 회원 등급이 VIP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이태원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와인 한 병을 주문하면 유리 와인잔을 함께 배달해주기도 하는 곳도 있었다. 이런 곳이 꽤 있는데 와인과 소시송, 살라미는 기본이고 치즈 플래터도 집으로 배달이 가능했다.


하루가 너무 고되거나 기분이 다운되는 날에는 그런 것들을 집으로 배달 주문을 받아 혼자서는 굉장한 과분한 저녁 식사를 하기도 한다. 이러려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합리화를 하면서. 내가 서울에 살게 되었을 때부터 마음 밑바닥에 잔잔한 행복감이 깔렸다면 이곳에 살게 되면서 그 위에 행복감이 한 겹 더 깔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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