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닉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후기
(2022.04)
평소 전시를 볼 때 마음에 드는 작품 딱 하나만 있어도 된다, 고 자주 말하는데 이번 전시는 인상과 색감이 남았다. 창문에 비친 물방울, 흩날리는 눈발, 빨간색이나 노란색 같은 어렴풋한 기억들. 사실 사진전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데, 피크닉 기획이라 안 가볼 수가 없었다.
어쩌다 두 번 관람했고, 함께 본 사람에 따라 경험과 기억이 다르게 남았다. 같은 콘텐츠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 것. 이 점이 특히 재미있었다. 각각 눈여겨보았던 포인트가 달라 두 번째 방문 후 새로 알게 된 것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에 슬찬님과 함께 갔을 때는 영화 보듯이 사진 속 사건의 전후를 상상해봤다. 내 눈에는 대체로 흐르는 시간을 사진으로 잘라둔 것 같았고, 한 장 한 장이 영화 스틸컷처럼 느껴져 다음 장면으로 이야기가 이어질 것만 같았다. 슬찬님은 사진에서 방향성이 느껴진다고 했고 영화 속 장면을 여럿 떠올려 주어 이런저런 상상을 나눌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트레바리 멤버들과 다녀왔는데, 각자 거리를 두고 조용히 관람하게 되어 귀를 좀 더 열고 다녔다. 침묵 대신 음악이 공간을 채우는 전시였고, 전시를 위해 특별히 작곡된 것이라 전시장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음악은 전시 섹션마다 달랐는데,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으로 시작해 밝은 느낌으로 발전했고, 음악이 없는 섹션을 지나가기도 했다. 마지막 섹션은 느릿한 단조가 들렸는데 사울 레이터의 사후 이야기와 빈 집 사진을 보며 듣기 좋았다.
이 날은 다큐까지 쭉 이어 관람했다. 남들이 뭐라 하든 하고 싶은 것을 그냥 하고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좋아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지나치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휘둘리지 않아서 본인의 스타일이 완성된 점이 특히 부러웠다.
전시든 영화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 내 방식대로 본 것을 나누고 다른 이의 방식을 얻으며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좋다. 조금 다르게, 숨겨진 이면을 보는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