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선샤인 뉴먼소셜클럽 '휴식 박사과정' #4
출근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오는 전화.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만 생기는 엄청난 이슈들. 답장을 기다리며 탑을 쌓는 메일.
숨을 꼭 참고 와다다 해치우고 나면 어느새 네 시. 드디어 숨을 돌릴 때다.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간식 시간은 꼭 지킨다. 경주마처럼 내달려가는 나를 멈춰 세우기 위해서다. 시계를 보지 않고 있다가도, 왠지 입이 궁금해지면 네 시다. 퇴근하기 세 시간 전, 간식 먹기 참 적당한 시간.
의도적인 휴식
오늘 모임에서는 '의도적인 휴식'을 조금 더 이야기했다. 보라님이 공유해주신 문장 중 아래 구절이 눈에 띄었다.
"휴식을 하루의 루틴 안에 포함하고, 의식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무의식이 대신 일을 하도록 한다. (...) 무의식이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게 하는 능력은 훈련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
의도적인 휴식은 '정해놓고 휴식하는 날'이 아니다. 일상에서 내가 '쉬고 있다'는 감각을 의식적으로 알게 하는,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않도록 멈추는 쉼이다.
무의식마저 능력적인 부분으로 다루며 '향상'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숨 한번 제대로 쉬지 않는 나를 돌아볼 필요는 있다.
숨을 바꾸어주는 쉼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쉼'은 에너지가 많을 때, 주말처럼 시간이 많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 위주였다. 그런데 나의 일상에서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회사에서는 '유능한 나', 'ㅇㅇ한 나'가 필요하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쁜 날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시간이 끌고 가는 대로 사는 동안에는 오히려 단절의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하던 일, 성취하고 노력해야 하는 일에서 잠시 떠나는 것. 단 1분이라도 마음을 환기할 수 있다면 숨이라도 한 번 제대로 쉬어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숨 세 번에 긴장이 풀릴 수도 있겠다.
내가 생각하는 의도적인 휴식은 환기에 가깝다. 숨 쉬는 공기를 바꿔주는 것.
'이렇게 바쁜데 쉼을 어떻게 끼워 넣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잠시 창문을 여는 것처럼 환기를 위한 쉼이라고 여기면 조금 가볍다. 직장인의 일상에는 환기의 기능을 하는 쉼이 더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일상에 끼워 넣는 쉼은 짧을수록 좋다. 부담이 덜할수록 더 자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자꾸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멈춰 세우는, 작고 소중한 쉼을 나에게 쥐여줘 보자.
오후 네 시의 간식
나는 매일매일 잘 쉬고 있는 편이다. 주로 회사에 머무는 낮에는 산책, 화분에 물 주기, 한숨 쉬기를 한다. 한숨 쉬기는 생각보다 좋은 방법이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챌 수 있는 큐가 된다. 3층에 내려가 입주 멤버에게 불쑥 말을 걸기도 한다. 일이 아닌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스스로를 긴장으로부터 꺼내기에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후 네 시의 간식. 나는 먹는 과정에서 '맛을 감각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허기를 급히 때우는 간식이 아니라 맛보는 간식을 선택한다 (물론 배가 차지 않으면 안 된다). 간식을 사러 나가며 산책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
간식의 종류는 그때 먹고 싶은 메뉴로 고른다. 이것도 중요한 포인트.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꼭 붙들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나에게 주는 경험은 자존감을 단단히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는 조금 더 나에게 집중하며 쉰다. 글이나 일기를 쓰고, 명상도 하고, 차도 끓여마신다. 최근에는 다시 책을 읽는 게 쉼이 되려고 해서, 읽는 시간을 더 많이 늘려보려고 한다.
아, 그리고 요즘은 종종 음악을 이용한다. 원하는 무드를 만들 때 활용하는데, 집중해야 하거나 차분해지고 싶을 때는 클래식을, 에너지 레벨을 팍팍 올리고 싶을 때는 팝송이나 EDM을 듣는 식이다.
휴식 박사과정을 밟고, 왈과 함께 온라인 멍상을 하는 요즘은 의식적으로 내 상태를 알아차리게 된다. 내가 무엇을 먹고,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이전보다 더 빨리 인지할 수 있다.
인지하는 순간 즉각적인 대처나 기분의 전환이 일어나는 드라마는 펼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상태를 가늠하게 되니까 다음 선택지를 조금 더 나은 것으로 고를 수 있게 된다.
신기하게도 오늘은 각자 꼽은 쉼이 비슷했다. 산책하기, 명상하기, 글 쓰기 같은 것들. 어쩌면 이런 쉼은 인간 보편의 쉼이지 않을까?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몸을 움직이는 것, 감각적인 경험을 하는 것. 그런 것이 마음에 물을 주나 보다.
그러고 보면 '쉬다'라는 용언은 '숨'과 '휴식'에 모두 쓰인다. 숨을 쉬는 것, 그리고 몸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잠시 머무르다'라는 뜻도 가졌다.
숨과 쉼.
이번 주도 오후 네 시의 간식과 함께, 부드러운 시옷 사이에서 잠시 머무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