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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ozoo Jun 27. 2020

휴식 박사 5호의 졸업 논문

빌라선샤인 뉴먼소셜클럽 '휴식 박사과정' #5 (후기)

드디어 휴식 박사가 되었다.


2020년 6월 15일부로 5주 간의 이론 학습, 사례 수집, 임상 실험을 마치고 휴식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내 최초 학사 출신 유보라 교수님(ㅋㅋㅋ)이 확인해주시면 정식으로 5호 박사가 된다. 수료 기념으로 그동안 다뤘던 내용을 전체적으로 정리한 졸업 논문을 제출한다.


* 5호 박사인 이유는 참석한 분들 중 이름 가나다 순으로 5번째 순서에 수료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 동기들의 이야기를 글로 발행함에 대한 동의를 미리 얻지 못했으므로, 다른 사례를 수집하지 않았다.



1. 휴식 연구의 필요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일 저녁의 쉼이 '쉼 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고 밥-세수-정리를 마치면 몇 시간이고 핸드폰을 붙들고 살기 때문이다. 'ㅇㅇ도 해야 되는데', '이제 그만 봐야 되는데'라며 수많은 '~해야 하는데'를 머릿속에서 지워내지 못한 채 몸만 가만히 두었다. 핸드폰을 하지 않고 잘 쉬는 게 도대체 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쉬고 있는지 궁금했다.


첫 시간에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됐다. 쉬는 것조차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도 발견했다. 5주 동안 다양한 시행착오, 깨달음, 감정을 지나오며 나만의 휴식을 알고,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혹독하게 몰아붙이거나,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습관을 발견할 때마다 자각하고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쉼을 생각하며 나를 알게 된 셈이다. 평일 저녁이 핸드폰과 함께 사라지는 사람이라면, 나를 돌보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휴식에 대해 꼭 탐구해보기를 권한다.


본 논문은 스스로에게 자비롭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돌봄이고, 사랑이며, 내 마음에 드는 삶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겠다는 의지의 기록이다. 지난 기록은 본문 링크 또는 하단 별첨 자료 참고.


휴식이 뭐죠 ⓒ 우주 OOZOO


2. 휴식의 정의와 개념

국어사전에서 찾은 '휴식'의 뜻은 이렇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쉼'.

'쉬다'로 넘어가면 조금 더 다양해진다: '피로를 풀려고 몸을 편안히 두다', '잠을 자다', '잠시 머무르다', '일이나 활동을 잠시 그치거나 멈추다. 또는 그렇게 하다'.


클럽에 들어오기 전에 생각한 휴식은 이것이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것, 몸을 가만히 두는 것, 멍 때리는 것. 국어사전에서 확인한 휴식의 개념과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몸을 가만히 두는 것만으로도 정말 잘 쉬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물리적으로는 누워있을지라도, 휴대폰이라도 쥐고 있다면 몸의 감각 기관도, 머리도 계속 팽팽 돌아가니까. 바로 그 점 때문에 휴식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박사과정 첫 시간에 휴식의 정의를 내려보았다:

몸과 마음을 루틴이나 무감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

나의 모든 감각과 가능성을 허락해주는 것.

정서적으로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 것.


이런 장면도 휴식 ⓒ 우주 OOZOO


이후 5주 동안 나의 휴식을 찾고, 실천해보며 휴식의 개념도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휴식에 각기 다른 기능이 있다는 것, 나에게 다양한 종류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살펴보니 에너지가 많은 상태의 나, 적은 상태의 내가 원하는 휴식이 다르고, 수행할 수 있는 휴식도 모두 달랐다.



나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정성스럽게 돌보는 것



박사과정을 수료한 2020년 6월 15일 버전의 '휴식' 정의이다. 모든 단어가 핵심이다. 적절한, 때로는 효과적인 휴식을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 요소가 필수적으로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 대상일 것

2) 습관이나 패턴대로 흘러가는 감정, 생각, 행동을 캐치해낼 것

3) 귀찮음 등 여러 핑계로 마냥 누워있거나, 시간을 뭉개지 않고 나의 욕구에 충실하게 대응할 것

4) 1~3의 내용에 대해 '좋아하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 써주는 것보다 조금 더 많은 정성과 애정을 들일 것


나에게 '맞춤 휴식'을 주는 것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처럼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자비 없는 사람일수록 스스로의 마음을 더 이해하고 수용해줄 필요가 있다. 어떤 욕구, 감정, 생각, 행동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일단 자각하고, 나 자신을 비난하거나 다그치는 대신 그저 받아들인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매일 다른 사람에게서 거절당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경험을 스스로에게서도 되풀이할 수는 없으니까. 이 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그림자 덕후니까, 그림자 찾기도 휴식 ⓒ 우주 OOZOO


3. 휴식의 사례

그렇다면 나는 언제, 어떻게, 어떤 쉼이 필요할까. 5주 동안 착실하게 리스트를 정리했다. 지난 글에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핵심만 간추렸다.


<나에게 꼭 맞는 쉼 조각 모음>

1단계: 에너지가 많이 들지 않는, 즉각적인, '환기'의 욕구를 채워주는, 조금 더 일상적인 쉼

2단계: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조금 더 드는, 구체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쉼

3단계: 물리적인 공간 이동과 시간 확보가 필수적인, 주로 여행에서 일어나는 경험으로 여겨지는 쉼

4단계: 깊고 강렬하지만 자주 일어나지 않는 정서적 교감의 순간. 교감의 대상은 친구일 수도, 애인일 수도, 가족일 수도, 혹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음


쉼 조각들 ⓒ 우주 OOZOO


4. 휴식 실험

4-1. 임상 실험의 설계

마음/상황/욕구에 따라 필요한 휴식이 다르므로, 내 상태를 계속 체크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에너지가 많은 시기에는 어떻게 하는지, 슬픔이나 외로움이 가득할 때는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지, 불안이나 두려움이 높을 때는 어떤지를 봤다. 물론 늘 나 자신에게 심취해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감각하게, 무심하게 슥 지나치는 일이 점점 줄었다. 또, 일찍 퇴근하거나 야근한 날, 약속이 없는 주말,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을 돌아보며 환경과 상황도 살폈다.


더불어 힘들 때 도피/회피하는 행동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낯선 자아를 만날 수 있는 상황과 상태도 함께 살폈고, '의도적인 휴식'도 다루었다.

특히 의도적인 휴식은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도록 멈추는 쉼'이라고 정의했는데, 일상 속에서 '지금은 쉬는 시간이다'라는 감각을 의식적으로 알게끔 한다. 자칫하면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내는 것만이 진짜 휴식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휴식의 확장된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 주의했다.


4-2. 실험 수행 및 결과

불안할 때는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손쉬운 방법인 '핸드폰 속으로의 잠수'를 압도적으로 자주 선택했다. 논문을 쓰는 보름 남짓한 기간에도 여전히 그랬다. '너 정말 이럴래?'라고 다그칠 때도 있었지만, 그 행동을 또 다른 내가 그저 지켜보는 것이 행동에 변화를 가져다 줄 때도 있었다.


박사 과정 수업 중 불안을 다루는 방식을 객관적으로 뜯어보려고 했다. 나는 '고장 난 나'를 문제로 삼고 최대한 빠르게 해결해서 '밝고 활기찬 정상의 나'로 되돌려 놓고 싶어 했다. 불안을 마주하기 전부터 '나 지금 불안할 것 같아, 어떡해!'라며 지레 겁을 먹고선 불안의 정 가운데로 자꾸만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나에게 밝음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또 어떤지. 모든 감정이 내 것이라는 인정, 금방 지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 더욱 불안해지기만 했던 것 같다.


오후 네 시의 간식 ⓒ 우주 OOZOO


휴식 리스트를 뽑는 동안에는 '유능함 못 잃어 병'을 발견했다. 초안의 대부분에 성취와 능력에 관련된 욕구를 채우는 휴식이 많았다. 항상 완벽하게 유능하고 싶은 나의 욕구가 쉬는 시간에도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다른 분들이 말씀해주신 '쉽고 빠른 쉼'을 추가했고, 좋은 기분을 더 좋게, 혹은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변화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지금 상태가 어떻지?'라고 감지 >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김

외롭거나 불안할 때 하는 행동이 나타나면: 한참 빠져있다가 알게 되면, 그다음 단계를 선택한다. 계속 머물러 있기도 했지만, 행동을 자각하면 불편한 마음이 들어 잠시 후에 그만둘 수도 있었다.

회사에서 하는 레벨 1의 휴식: 더욱 신경 써서 지키게 됐다. 오후 네 시의 간식 소중해.

밤에, 집에서 할 수 있는 레벨 1의 쉼: 더 자주 했다.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내일도 좋기 위해서였다.

레벨 2, 3의 쉼: 주말 동안 적절히 나눠서 했다. 편안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쉼을 매주마다 두었다. 사실 예전에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 시간에 느껴야 할 것들을 느끼고 마음을 '지금'에 두었더니 해치워야 할 일이 아닌 정말 쉼처럼 느껴졌다.


새로 발견하게 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동 시간의 혁명: 이사를 하고 이동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줄어든 시간을 이용해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그만큼 체력을 아낄 수 있어 몸이 덜 피곤하다. 몸이 덜 피곤하니 마음도 좀 덜 피곤한 듯.

집안일의 기쁨과 안정감: 매일 집을 돌보는 활동이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렇게까지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참 신기하다.

새로운 쉼을 찾기 위한 시도: 집 근처 한강 공원에 가보는 등,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쉼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앞으로 리스트를 더 늘려 쓸 수도 있겠다.


영감을 주는 공간도 휴식 ⓒ 우주 OOZOO


5. 결론

나에게 꼭 맞는 휴식을 찾는다는 것은 나의 욕구를 안다는 것이다. 나의 욕구를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를,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마음을 본다는 것은 나의 욕구와 상태를 감지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드는 순간에 휙 넘어가지 않고, 알아차리는 일이 필요하다.

휴식 박사과정 동안 왈이의 마음단련장의 '멍상'을 병행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왈의 김자비 님이 "마음을 보는 힘이 길러졌으면, 나를 괴롭히는 마음의 구조를 바꾸는 데에 그 힘을 써야 한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휴식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감각을 세밀하게 느끼는 것을 다른 말로 '예민하다'라고 표현한다. 감각이 너무 예민해서 한의원 선생님도 늘 놀라는 나. 기쁨도, 슬픔도 훨씬 크게 느끼고 크게 표현하는 나.

얼마 전까지도 예민한 나를 싫어하고 부끄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남들보다 더 크게, 더 깊이 느끼는 내가 불편했다. 다른 사람과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도, 그래서 들어야 했던 '너는 왜 그래?'를 듣기 싫었다.

하지만 요즘은 예민한 내가 좋다. 섬세하게 보고 듣고 맡고 느낄 수 있는 내가 좋고, 예민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깊은 감각 경험도 소중하다. 삶을 더 진하게 더 선명하게 산다는 것이니까. 예민하다는 건 나쁜 것이 아니다.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래서 보라님께서 감각을 세밀하게 느끼는 사람인 것 같다고 하셨을 때 기뻤다.


예민한 나를 긍정하는 것, 몸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마음챙김에 더 신경 쓰는 것, 나를 그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겨주는 것. 이렇게 세 가지는 박사 후 과정에서 계속 다뤄보기로 한다.


잘 쉽시다 우리 ⓒ 우주 OOZOO


더욱 잘 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임상 사례가 필요하다. 또, 쉼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곁에 많이 둬야 한다. 자주 말하고, 함께 실험하고, 경험을 나누면서 나의 휴식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도 줄 수 있고, 쉼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러닝메이트가 되어줄 수도 있다.

또한 쉼을 이야기하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 생산성이나 효율성, 능률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잘 쉬어야 일도, 생활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위해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친구들을 곁에 두는 것처럼, 나를 위한 휴식 역시 꼭 필요한 것으로 여기고 잘 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잘 쉰다는 것은 나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정성스럽게 돌본다는 것. 스스로를 잘 돌볼수록 나를 더 사랑하게 되고, 그렇게 채운 사랑을 다른 이와도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것. 이것이 휴식의 진짜 의미다.




[별첨] 휴식 박사과정 주차별 보고서

#1 잘 쉬는 게 뭘까? https://brunch.co.kr/@mllesophie/25


#2 '불안한 건 고장 난 거니까 고쳐.' https://brunch.co.kr/@mllesophie/26


#3 쉼 조각을 모아보자 https://brunch.co.kr/@mllesophie/27


#4 오후 네 시의 간식 https://brunch.co.kr/@mllesophie/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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