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땅을 파다 <기생충>을 이해하다

by 안효원

비닐하우스에서 일하고 돌아오는데,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멀리서 소리쳤다. “뭐 해?” “땅 파!” “?” 잘못 들은 건가? 땅을 판다니…. 마당에 도착해 보니 진짜 땅을 파고 있었다. 타인의 행위에 절대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지만, 이번엔 궁금해 어쩔 수 없었다. “땅을 왜 파는 거야?” “그냥, 재밌잖아!” 아이들 얼굴이 정말 재밌어 보였다.


“아빠도 파!” 암요, 집에서 종노릇 하는 제가 힘껏 파드려야지요. 호미로 땅을 파고, 꽃삽으로 흙을 푸고, 집게로 돌을 꺼내 올렸다. 쉴 새 없이 호미질을 하면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어디를 못 가니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무슨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흙을 파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하루가 가고, 개학 날이 오고, 코로나19도 끝날 테니!


“아빠, 조커가 난쟁이만 안 때렸어?” 한참 호미질하던 딸이 물었다. “응?” “영화 <조커> 말이야.” 아, 우리 어제 조커와 배트맨 얘기를 했지? 야채를 안 먹는 아들을 꼬시기 위해, 야채를 먹으면 배트맨이 될 수 있다고 했었다. 조커는 이미 <복면가왕>을 보고 알고 있었고. “맞아. 난쟁이만 조커한테 잘해줬거든.” “우리 이렇게 같이 일하는 건 좋은 거지? 친해지는 거니까!”


한 시간 넘게 땅을 파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 어렸을 때 산에서 놀던 이야기, 남자 놈들이 입에 산 개구리를 넣고 교실에 들어와 여자애들을 놀라게 한 이야기, 돌이 나오면 구석기 주먹도끼 이야기, 이 구덩이를 고라니 함정으로 쓰자는 이야기….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다. 이해할 수 없어 불만으로 남겨진 의문이 여기서 풀렸다. ‘그 가족은 왜 그리 친한가?’


요즘 그런 집은 거의 없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시대, 세대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액션이나 판타지면 모르지만, <기생충>은 빈부격차를 ‘매우 현실적’으로 그린다고 평가받지 않는가. 그런데 그 출발이 ‘비현실적’으로 화목한 가족이라니?! 그러다, 아이들과 같이 땅 파고, 이야기하면서, 가족끼리 많은 시간을 보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땅 파고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20200306_170736.jpg 같은 쎄쎄쎄를 해도 직접 판 구덩이에서 하면 더 재밌다. 어쩌면 평생 보지 못했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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