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이유로 상처 받지 않기를
“아빠, 나 여기 점 생겼어.”
거울을 보던 딸아이가 말했다. 암, 누구 딸인데.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얼굴에 점이 수십 개는 되는 남자. 대학교 입학해 처음 만든 이메일 아이디도 ‘점소년’. 그의 딸이 점이 안 날 리 없지. 아빠가 볼 때는 한없이 예쁘고, 점은 귀엽기만 한데, 본인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왼쪽 볼에 있는 것은 ‘아이유 점’이라면서 슬쩍 넘겼는데, 이번에는 말하는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점에 얽힌 기억들이 떠올랐다. 고등학생 시절, 아침에 학교에 갔는데 짝꿍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짜장면 먹고 왔냐?” 무슨 소리인가 싶어 “아니”라고 답했더니, “네 얼굴에 짜장 XX 튀었어.”라며 박장대소를 했다. 또 ‘얼굴의 점을 다 세면 하나 더 늘어난다’는 속설을 들은 친구들은 내 얼굴의 점을 세다가, “너무 많아서 못 세겠다. 늘릴 필요도 없겠어.”라며 포기했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는 게 좀 그렇지만, 나는 이목구비가 매우 뚜렷한 편이다. 매우 넓은 마음으로 보면 괜찮은 얼굴.(지금은 얼굴이 너무 넓어져 넓은 마음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점과 그에 비해 적은 머리숱, 키에 비해 다소 큰 얼굴 때문에 내 외모는 항상 과소평가됐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점보’, ‘점돌이’, 심지어 ‘점쟁이’라고 놀려댔다.
속상한 마음에 집에 돌아와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난 왜 이렇게 점이 많아?” 엄마는 아무 말 못 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답을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도 나만큼 많은 점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걸로 속상해하면 엄마의 마음도 아플까 봐 더 이상 문제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어머니는 내가 성인이 되었을 무렵, 얼굴의 점을 다 뺐다.)
“재인아, 하늘에 별이 많은 게 좋지?”
“응”
“점은 하늘에 별과 같은 거야. 반짝반짝 빛나는 게 얼마나 예뻐? 아빠는 세상에서 재인이가 제일 예뻐!”
딸은 얼굴에 생기를 되찾았다. 때가 되면 할머니처럼 점을 빼겠지만, 그전까지 나처럼 놀림을 당하지 않으면 좋겠다. 점 말고 예쁜 구석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 하나로 상처를 받을까. 한 가지 이유로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코로나19 때문에, 동양인이란 이유 하나로 차가운 시선을 받지 않으면 좋겠다. 그날이 오면, 밤하늘에 더 많은 별이 반짝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