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복면가왕 나갈까?

즐길 수 있다면, 지는 것쯤이야!

by 안효원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기분이다. 애들은 학교에 안 가고, 주말에 교회를 안 가니, 시간의 흐름을 알 수가 없다. 그런 우리 가족에게 빛과 같은 존재가 있으니, 바로 <복면가왕>이다. 일요일 저녁이면 밥을 일찍 먹고 네 식구가 소파에 모여 앉는다. 복면가왕도 재밌지만, 그것을 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더 재밌다. 손에 주먹을 쥐고, 앉았다 일어났다, 끝내 환호성을 지른다.


“나 복면가왕 나갈까?”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해 물었다. 표정이 심각했다. 먼저 첫째인 딸에게서 반응이 왔다. “아빠, 안 될 거 같아.” “왜?” “가면을 벗으면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면 어떡해?” 참으로 뼈 때리는 통찰력이다. “음, 그건 아빠가 유명해지면 되지?” “어떻게?” “브런치에 글 열심히 써서 유명 작가가 되는 거야!” 딸의 표정은 떨떠름했지만, 일단 패스.


둘째인 아들의 표정은 더 좋지 않았다. “아빠, 나가지 마.” “왜?” “질 거 같아.” “질 수도 있지. 이기고 지는 거보다 즐기는 게 더 중요한 거야!” “싫어. 아빠 지는 거 싫어.” 여섯 살 아이는 지는 걸 무척 싫어한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빠가 주윤발(지금 가왕)한테 지는 거, 아니 1라운드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나 보다. 오래 설득했지만, 아들은 끝까지 시무룩.


‘누구 닮아 이렇게 지는 걸 싫어할까?’ 생각하다, 어린 내 모습이 떠올랐다. 초등학생 시절, 떨어지는 게 싫어 학생회장의 꿈을 접고 부회장을 선택했다. 남한테 지기는 싫어하고, 아이러니하게, 승부욕은 없는 나는 결국 지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동시에 포기했다. 요즘 둘째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인다. 자신이 잘 못 하는 보드게임을 하면, 심판을 자처해 한 발 물러선다.


아이가 비록 지더라도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복면가왕 포기 선언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노래방 조명을 틀고 열창하는데, 어느새 둘째가 소파에 엎드려 있다. “아빠가 김일중 보다는 잘하지 않아?” “천생연분 해봐!” 신나는 리듬에 춤까지 추며 노래를 불렀다. 어둠 속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눈은 끝까지 마주치지 않았다.


인생의 승부는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기에, 이기고 지는 것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나는 늦게 알았지만, 너는 일찍 깨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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