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지금(마흔)의 정신으로 청춘을 살면 어떨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미련이 남는 건, 그때 나는 ‘나’로 살지 못했기 때문. 어려서부터 한눈팔지 않고 공부만 한 보통의 이십 대는 아름답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으나 미숙했고, 선택한다 했으나 떠밀려 살았다. 작은 빛이라도 나의 것을 발했어야 했다. <사냥의 시간>을 보며, 잿빛 청춘의 나를 마주했다.
출발은 알 파치노의 <칼리토>(브라이언 드 팔마)와 똑같다. 감옥에서 나온 준석(이제훈)은 대만의 따뜻한 바다를 꿈꾼다. 그는 친구 장호(안재홍), 기훈(최우식), 상수(박정민)에게 도박장을 털어 헬조선을 떠나 파라다이스로 가자고 한다. 중년의 칼리토가 알았다면, 그러지 말라고 말렸을 텐데…. 그런 방식으로 천국행 티켓을 사면, 결국 도착하는 곳은 지옥이라고.
불타는 청춘은 ‘법 밖의 세상이 더 무섭다’는 조언을 흘려듣는다. 이런 선택을 하는 그들도 세상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은, 누군가 시키는 대로 살아도, 3년 동안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세상. 30년 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기훈의 아버지는 부당해고를 당해 길에서 절규하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그른 길을 선택할 확률은 5:5. 비난은 가혹하다.
사냥의 시간. 청년 넷이 함께 총까지 들고 있으니, 그들은 자신들이 사냥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넓은 사냥터에서 그들은 누가, 어디서 자신을 쫓는지조차 모르는 어린양에 불과하다. 추격자 한(박해수)은 홀로 있지만, 그 뒤에는 온갖 더럽고 무서운 것들이 진 치고 있다. 그에 비해 네 주인공은 아직도 가족, 우정 등을 마음에 품고 있는 어린 영혼일 뿐이다.
액션 영화일 거라 기대한 작품은 공포 영화에 가깝다. 상대가 힘이 맞아야 액션의 쾌감이 폭발하는데, 준석 일행은 한의 적수가 못 된다. 어느덧 사냥감이 되어 피 흘리는 양들이 눈앞의 위협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은 가엽고, 슬프며, 처절하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니, 그 시절 내 삶이 잘못이라고 물어뜯는 건 가혹하다 싶다. 나의, 사냥의 시간은, 끝났다.
세상의 공격에 상처 받지 않으려면 강해지던가, 멀리 떠나던가 해야 한다. 하지만 내게 그럴 힘은 없고, 남은 건 상처 받지 않게 나를 비우는 것. 더이상 후회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