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E>(앤드류 스탠튼, 2008) ⓵
도시에서 영화를 무지하게 많이 보던 시절, 2008년 최고의 기대작은 <월-E>였다. 예고편에서 만난 ET나 쌍안경을 연상시키는 귀여운 외모(혹자는 과속방지 카메라를 닮았다고 하지만), 쓰레기 더미가 된 지구에서 ‘혼자놀기’의 진수를 선보이는 녀석은 ‘귀여움’의 절정이었다. 더구나 <몬스터 주식회사> 등 애니메이션 잘 만들기로 소문난 픽사(PIXAR)가 그 아비 아니던가.
<아이언맨> <쿵푸 팬더> <다크 나이트> 등 걸출한 블록버스터가 속속 등장해 괜히 불안해졌다. ‘우리 월-E가 얼굴에 철판 깐 놈이나, 운동 좀 하는 곰탱이보다 못하면 어쩌지.’ 하지만 나의 오지랖은 명백한 기우였다. <월-E>는 다른 작품과 별개로 독야청청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나름의 매력을 온전히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월-E>는 장점이 별처럼 많다.
어떤 장면을 캡처해도 한 폭의 그림이 나올 법한 화려한 영상미, 월-E, 이브, 모, 뚱뚱보 선장 등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캐릭터들, 악인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 넘치게 진행되는 이야기, 그리고 월-E와 이브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까지. 700년이 지난 미래에서 온 녀석은 104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관객을 흐뭇하게 한다.
눈에 띄는 것은 <월-E>가 보여준 ‘몸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다. 700년 동안 홀로 지구 청소를 도맡아왔던 월-E는 우주에서 온 탐사 로봇 이브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비록 그녀가 무표정하거나, 타이타닉호보다 큰 배를 순식간에 부수는 괴력을 갖고 있어도 상관없다. 사랑에 빠지는 데 이유를 대는 것은 세속에 물든 어른들이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월-E가 시종일관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이브의 손을 잡는 것이다. 월-E는 즐겨보던 고전영화 속 남녀 주인공이 손잡는 장면을 보며 오매불망 그 순간을 기다린다. 슬며시 손이 닿는 순간 자신과 이브는 어느덧 ‘사랑하는 존재’로 변해있을 테니까. 로봇이나 사람이나 몸의 마력은 대단하다. 욕망의 대상이 아닌, 서로 마음이 통하는 증거로 맞잡은 두 손, 그곳이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