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스티븐 스필버그, 2012)
“나는 남북전쟁 종식을 눈앞에 두고 했던 링컨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 연설문을 읽으면서 ‘정의를 내세워 승리한 사람’을 발견했다. 링컨은 선거에서 숱하게 떨어졌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누구보다도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노예제 폐지론자와 노예 소유자들이 모두 그를 공격했다. 인기도 없었다. 그러나 링컨은 내전에서 패한 남부를 적으로 몰아세우지 않았다. 남과 북을 선과 악으로 갈라치지도 않았다. 정의와 평화, 연방의 통합을 위해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자고, 모든 이를 사랑하자고 호소했다.”(<운명이다-노무현 자서전>(유시민 정리, 2010))
링컨 대통령을 생각하면, ‘노예제도 폐지’가 떠오른다. 미국의 대통령이니 막강한 권력으로, 옛 왕이 시혜를 베풀 듯했겠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영화 <링컨>은 미 하원에서 노예제도 폐지 내용을 담을 수정 헌법 13조 통과 과정을 담는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국회는 전쟁터. 그는 역사상 한 번도 난 적이 없는 구멍을 뚫기 위해 온 모든 걸 쏟는다.
수정 헌법을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과 면담할 때 상대는 노예제 폐지 이후의 혼란을 우려한다. 링컨은 말한다. 자신은 지금 그 이후의 일들을 고민할 여력이 없다고. 남북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가 전장에서 싸우듯, 그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그가 쉴 곳은 많지 않다. 자식 잃은 아내의 슬픔, 자기 길 가겠다는 아들 모두 버겁다.
링컨은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 없다. 어둠 속을 빠르게 달리는 배 위에 홀로 선 것처럼 무섭고 힘들지만, 묵묵히 앞만 바라본다. 그에게 있어 정의는 평등이다. 평등에 기초하지 않은 정의는 가진 자들의 판타지일 뿐. ‘내’가 ‘너’ 위에 서 있을 때는 사랑도, 정의도, 신도 싸구려가 된다. ‘내’가 ‘너’와 같은 자리에서, ‘너’의 자리를 마련할 때, 사람 사는 세상이 열린다.
링컨에 대한 수많은 평가가 있지만, 나는 그를 존경하기로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기 때문에 그렇고,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짐작할 수 없기에 그렇다. 역사의 작지만 위대한 구멍을 뚫어 놓은 사람 링컨.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구멍이 뚫려 죽는다. 죽음은 슬프다. 노무현 대통령 때도 그랬다. 그때, 다시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참, 어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