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 물을 대고 왔다. 물꼬를 조금만 열어도, 물은 많이 들어간다. 우리 역사에 비슷한 일을 꼽으라면, 단연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 사건이다. 하룻밤, 밀실에 울린 총성에 소용돌이가 일고, 국가의 흐름이 바뀌었다. 맞은 자에 대해서는 공과, 찬반의 다양한 말이 있지만, 쏜 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이상한 건, 범죄자(전두환)의 평가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전두환은 김재규를 ‘과대망상증 환자’로, 사건을 ‘대통령이 되겠다는 허욕이 빚어낸 일’로 비틀었다. 그렇게 영원히은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42년이 지나 <남산의 부장들>로 되살아났다. 김부장(이병헌)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다. 전직 부장과 그렇고, 미국대사와 그렇고, 청와대 관계자와 그렇다. 하지만 안 통하는 자가 있으니, 박통(이성민)이다.
한때 가장 친했고, 함께 혁명(쿠데타)을 일으킨 두 사람. 한 사람은 국민을 조종하고, 한 사람은 이를 두려워한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의심’이다. 박통은 자신이 ‘혁명 정신’의 화신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을 반대하면 빨갱이요, 불순분자다. 김부장은 그런 그를 의심한다. 눈앞에 있는 자는 시대착오적 고집쟁이일 뿐, 더 이상 혁명을 위해 한강 다리를 건넌 이가 아니다.
의심하지 않는 자에게 힘이 주어지는 역사의 아이러니. 박통은 자신의 힘을 경호실장(이희준)에게 잔뜩 실어준다. ‘수백만을 죽여도 상관없다’고 외치는 그가 보기에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라’는 김부장은 나약한 배신자일 뿐. 그들에게 있어 혁명은 너무 숭고한 것으로,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조직이 무너져도, 사람이 죽어 나가도, 의심을 허락지 않는 이가 바로 독재자.
김부장의 의심은 고통의 불이었다가, 용기의 불이 되어, 박통의 몸을 뚫었다. 의심의 구멍이 났다. 그가 지금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자기 명예를 회복해 달라’가 아니라, ‘의심하라’ 아닐까. 의심의 구멍 사이로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으라는 것이다. 세상은 많이 좋아졌지만, 숨구멍이 필요한 곳이 여전히 많다. 막힌 게 익숙해지면 안 된다. 살아있는 곳에는 물길이 필요하다.
의심하는 자는 미움을 받는다. 의심하지 않는 자는 힘을 얻는다. 진리가 가려져 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