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가 말하다, 쉿!

뜨거우면 매워져, 열 받으면 독해져

by 안효원

올해 고추를 1200대를 심었다. 어머니는 겨울마다 병원을 다니며 줄여야지, 줄여야지 했지만, 이번에도 줄이지 못했다. 하우스 두 동과 노지 한 곳,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매운맛, 중간 맛, 순한 맛으로 400대씩 심었다. 장마 오기 전, 처음 고추가 빨개지고, 맛이나 볼까? 하는 요량으로 중간 맛을 한 입 먹었는데, 오 마이 갓, 입에서 불이 났다. 중간 맛이 이 정도면?


매운맛은 더 매웠고, 순한 맛도 매웠다. 온통 매운맛이니, 순한 맛을 찾는 사람은 어쩌지? 이웃에게 순한 맛을 공수해 섞어서 팔기로 했지만, 올해 고추 농사가 폭망이라, 그쪽 사정도 녹록지 않단다. 역대급 장마에 여기저기서 고추 농사 접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매운맛만 있어서 어쩌지? 에서 매운맛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다! 가 되었다. 고추를 모시게 되었다.


며칠 전, 아버지와 저녁을 먹는데 먹어보라며 고추를 건넸다. 어디 거냐고 물으니, 매운맛 거란다. 아니, 그 매운 고추를 먹으라고? 째려보지는 못하고, 그냥 안 먹었다. 그러자, 먹어보라고, 많이 안 매워졌다고 했다. 먹어보니 매콤한 게 아주 맛있었다. 아버지는 장마가 길어져 햇빛을 많이 못 보고, 뜨거운 날이 적어 고추의 독기가 덜해진 것 같다는 의견을 펼쳤다.


언제 안 그랬겠냐만, 뜨거운 대한민국이다. 각자 생각하는 좋은 나라 만들겠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다들 자유, 정의, 민주를 말하지만, 말은 섞이지 않고 서로 부딪혀 더 뜨거워지는 형국이다. 서로 이기기 위해 더 열을 내 말하니, 그 속에 독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 사회에도 장마처럼 흐린 날이 오면 좋으련만, 시원한 비가 내려 독기가 빠지면 좋으련만….


침묵, 긴 시간 마음 졸이고, 농사 폭망을 겪으며 얻은 소중한 교훈. 대가가 큰 만큼 절대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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