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앙!”
택배 상자를 열자, 귀여운 호랑이 네 마리가 포효했다. 송도 이책임이 보낸 무케 맥주다. 무슨 술 선물이냐, 싶겠지만, 마음이다. 올해 유난히 날씨가 궂었다. 집중호우가 오고, 태풍이 지나가면, 어김없이 ‘괜찮냐?’는 카톡이 왔다. 흉년 소식을 전하니, 힘내라고 무케 맥주를 보낸단다. 여기도 편의점 있다고 거절했는데, 가보니 없어서, 두 번째 제의를 크앙 물어버렸다.
이책임을 처음 만난 건 25년 전, 고1 때. 처음부터 우리는 단짝이었다. 김사장, 옹선생은 좀 놀았고, 친해지기에, 김차장은 키가 너무 컸다. 영화를 좋아해 주말마다 같이 극장에 갔고, 2학년 때 반이 갈렸어도, 서로 찾아가 점심을 같이 먹었다. 사실, 이놈은 나이가 어리다. 80년 8월생, 79년 12월생인 내가 겸상할 수 없지만, 이마처럼 넓은 마음으로 친구 먹어줬다.
분명 어린 이책임인데, 뭐든지 나보다 빨랐다. 입대도, 취직도, 결혼도….(가는 건 순서를 지켜라, 이눔아!) 대학생 때 과외해서 술값을 댔고, 늘 아쉬워 소주랑 과자를 사 들고 그의 집에 가 늦게까지 마셨다. 생일에는 내게 성화(聖畫, 문근영님께서 친히 광고하신 요플레 포장지)를 잔뜩 안겼고, 여친이랑 헤어졌을 때, 의정부에서 가장 비싼 횟집에 가서, 놀리며, 위로했다.
이런 적도 있었다. 영화주간지에서 기자로 일할 때, 임금 체불이 길어지면서, 점심 사 먹을 돈이 없었다. 직장 잘 다니는 줄 아는 가족들에게 말할 수도 없고, 이책임에게 전화해 ‘10만 원만 빌려 달라’고 했다. 점심시간에 돈을 찾고 보니 잔액이 90만 원, 이눔이 100만 원을 보낸 거야? 확인해 보니, ‘아까 너무 정신이 없어서 얼만지 잘 못 들었어’라고 답했다. 아, 눈물….
스무 살 때, 사는 게 뭔가 싶어, 의정부역에 가서 춘천행 기차표를 샀다. 그때 전화가 왔고, 이책임은 나의 낭만을 한참 비웃더니 자기는 망월사역에 가서 표를 샀다. 다음날 우리는 소양강댐을 갔고, 닭갈비 대신 막국수와 소주를 택했다. 춘천 시내에서 역까지 나발을 불며 걸어간 우리는 자유인! 무케 덕분에 병맛 청춘을 떠올린다. 맥주 하나에 추억 하나, 취한다, 크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