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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좋을까?!

[깜언 골프 8] 나이 마흔, 남자 셋, 골프

by 안효원

“헛되지 않았어.”


김사장과 약속한 날이 되었다. 설렜다. 30년 전, 운동회 날 아침에 눈떴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부푼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파주로 향했다. “딱! 딱!” 쉴 새 없이 골프공이 날아갔다. 주차장에서 손가락에 반창고를 감는 내 모습은 흡사 전장에 나가는 장수와 같았다.(그랬을 거야.)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온 김사장은 장갑을 하나 건넸다. 나는 조용히 반창고를 풀었다.


2층에 올라 나란히 섰다. 앞뒤로 사람이 많은데, 하나같이 잘 쳤다. 괜찮아, 난 기죽지 않아! 하지만, 김사장의 부탁으로 원포인트 레슨을 하러 온 프로 선생님이 뒤에 섰을 때, 난 기죽고 말았다. “팔로 치려고 하지 말고, 몸통을 회전하세요.”, “몸이 앞으로 나가야 해요.” 아이큐 140의 머리는 이해했지만, 마흔의 몸은 알아듣지 못했다.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느낌이다.


그 와중에 위로가 되는 게 있다면, 선생님이 나의 그립과 어드레스 동작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 박하림프로의 가르침을 내가 잘 따르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 회동을 김차장에게 알렸을 때, 그는 말했다. “잘 안 맞으면, 그냥 웃어!” 하하하, 하하하하! 골프장에 이렇게 풍성한 웃음꽃이 필 줄이야. 7번 아이언으로 100미터를 훌쩍 넘겼지만, 자꾸 오른쪽으로 치우쳤다.


반대로 김사장은 비거리는 좀 짧지만 정확히 공을 앞으로 보냈다. 골프라는 것이, 아니 뭐든지 멀리 가면 뭐하나, 똑바로 가야지. 내 공의 방향을 내가 쥐고 있어야지. 내가 답답하고, 김사장이 부러웠지만, 놀러 온 건데 그냥 웃자, 하하하! 앞으로 공 칠일 많은데, 오늘은 편하게 하자, 스윙, 스윙, 스윙! 멀리 달을 보며 맘을 편히 먹으니, 방향이 조금씩 정면으로 향했다.


첫 골프장 연습을 마치고, 김사장이 말했다. “안기자, 3개월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어.” 아, 나 확 그냥 울어버릴까? 그 한 마디가 너무 고마웠다. 그는 말을 이었다. “둘이 하니까 정말 재밌다. 김차장이랑 셋이 베트남 라운딩 가면 얼마나 좋을까?” 맞아, 얼마나 좋을까! 트렁크에 실린 쌀과 밤은 아이언 세트로 바뀌었고, 함께 나눈 가을 달밤 정취가 가슴에 꽉 찼다. _ 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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