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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Oct 19. 2020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너에게

[깜언 골프 9] 나이 마흔, 남자 셋, 골프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Zion. T, ‘양화대교’)     


김사장과 즐거운 골프장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니 거의 자정, 김차장에게 아까 찍은 동영상을 보냈다. 베트남은 2시간 늦고, 궁금해 잠 못 자고 있을 테니. 그는 골프 꿈나무들을 격려하며 조언을 해줬다. “어드레스 때 손목을 앞으로 내밀지 않으면 좋을 듯” 잠시 말이 없더니 동영상을 찍어 보냈다, 잠옷 입은 채로. 김사장 말했을 때는 귓등으로 들었는데, 바로 접수 완료!     


벼도 다 벴겠다, 아직 밭일이 많이 남았지만, 클럽도 생겼겠다, 이제 더 휘둘러야지, 생각하는데 드는 생각, 근데 뭘 치지? 빈 스윙만 해도 좋지만, 뭔가 날아가는 게 보여야지. 깡통을 치자니 좀 없어 보이고…. 그때 떠오른 것이 밤이다. 집 주변에 열 그루가 있는데, 유독 하나가 밤알이 작고 썩었다. 줍는 것 같지도 않고, 안 주울 수도 없어 고민했는데, 골프공으로 변신!     


따뜻한 손길로 밤을 주우며 몇 해 전 일에 피식 웃었다.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밤을 주워 현관 앞에 수북이 쌓아놨다. 그런데 다음날 나가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헉, 소름! 산 아래 외딴집, 해가 지면 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인데, 누가, 한밤중에, 그것도 집 바로 앞에 왔다니. 불쾌한 맘으로 누굴까 생각하고 있는데, 불현듯 떠오른 자 있었다. 며칠 전 본 다람쥐!     


밤새 쉴 새 없이 데크를 왔다 갔다 하며 밤을 가져갔을 그 앙증맞은 모습은 상상할 때마다 웃음이 난다. 좋아, 오늘은 너희 먹이를 내가 직접 배달해주마. 밤을 아무 데나 날려 보낼 수 없어 집 뒤에 동산에 올랐다. 저기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너에게 휘익, 팅, 휘익, 팅! 턱! 헉! 땅을 고른다고 골랐는데, 돌덩이 하나 있었다. 괜찮아 헤드가 좀 찍혔지만, 만 오천 원!     


흙이 허공에 나는 모습이 마치 골프장의 그것과 같았다. 얼핏 보면 잔디나, 풀이나. 탑볼이라고 하여 골프공 위를 치는 걸 말하는데, 밤 위를 치니 절반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밤 도둑놈들, 껍질까지 까주는 서비스를 다 누리네. 이러고 놀다 문득, 친구들 열심히 일할 시간, 이런 호사를 혼자 누려도 되나 싶다. 뭐 어때? 니들도 나 없이도 좋은 거 많이 누리며 사시압! _ 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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