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효원 Nov 10. 2020

농부와 누나

[깜언 골프 12] 나이 마흔, 남자 셋, 골프

“웃으라고 ㅋ”     


독학 골프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약 백일이 지난 셈인데, 인도어 연습장 딱 한 번 가봤지만, 틈틈이 스윙 연습을 많이 해서, 그동안 배운 게 참 많다. ‘골프는 하체의 좌우 이동과 상체의 회전 운동이 핵심이야!’ 역시 범 내려오는 거 무서운 줄 모르는 건 하룻강아지지. 자신감 뿜뿜, 들로 나가 바람을 맞으며 풀의 목을 치는 영상을 찍어 골방(골프 카톡방)에 올렸다.      


‘아마 다들 놀랄 거야.’란 마음으로 답을 기다리는데, 3분 후 김차장이 유튜브 영상을 보내왔다. 이름하여, ‘우리누나 골프연습 개웃김 꼭 보시길’ 아, 제목 그대로 개웃기긴 한데, 이게 골프 꿈나무의 열정을 보고 할 소리인가? 욱하는 마음에 불타는 개 이모티콘을 보냈더니, ‘웃으라고 ㅋ’란 답이 왔다. 분명 문자인데, 그 속에 실실 웃는 김차장의 얼굴이 보이는 건 뭐지?     


밤 열 시 반, 김사장이 당근마켓을 통해 산 골프화를 받으러 간단다. 풀이 죽어 침대에 누웠다, ‘그래 이러면 안 되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웃기게 슬픈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풀도 바람을 맞아가며 커야 단단하지 않던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바람 안 맞고 자란 풀들은 약하고 쉽게 뽑힌다.) 어둠 속에서 농부와 누나, 그리고 타이거 우즈의 스윙 영상을 번갈아 봤다.     


유레카, 답을 찾았다! 누나는 좌우 이동이 심했고, 우즈 형님은 (그 속에서는 큰 힘의 이동이 느껴지지만) 겉으로 보기엔 큰 움직임이 없었다. 나? 불행하게도 농부의 스윙은 누나의 그것과 더 닮아 있었다. 이게 김사장과 나의 골프 롤모델인 김차장이 보지 못했을 리 없다. 그는 큰 깨우침을 주기 위해, 겉으론 웃으라고 했지만, 커브를 날렸고, 내 머리를 ‘쿵!’ 강타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클럽을 잡았다. 화장실 거울을 보며 원래 하던 대로 하니, 어, 누나 안녕하세요! 이제 그만 헤어져요. 저는 좀 달라져야겠어요. 애들이 웃어요. 몸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하지만 분명히 중심 이동의 느낌을 받으며, 스윙을 연습했다. 달이 기울어가면서 모양이 (순전히 내 느낌상) 우즈 형님과 가까워졌다. 그나저나, 우리 누나는 잘 지내고 있을까? _ 안기자

매거진의 이전글 병 주고 약 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