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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Nov 17. 2020

배불뚝 사춘기

[깜언 골프 13] 나이 마흔, 남자 셋, 골프

“나 사춘기야!”

     

지난봄, 포항에 갔을 때, ‘나 사춘기야’ 소리를 들었다. 크게만 보였던 대학 2년 선배가 그런 말을 하니, 무척 반가웠다. ‘형, 사실 저도 사춘기예요.’ 요즘 자기 확신에 취해 남 탓 만 하는 사람들이 너무 싫다. 문제를 말로만, 지들이 하나님이라도 된냥,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모습에 몸서리가 쳐진다. 풋풋할 땐 안 그랬는데, 배 불뚝이가 되어 사춘기가 제대로 왔다.      


독학 골프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거다. 괜히, 자기 돈벌이로,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듣기 싫다. 행여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모르지만, 안 그렇다면 난 아마 골프를 초장에 접을 거다. 길이 당장 보이지 않아도, 지금껏 남의 말 고분고분 들었으니, 이제는 삐딱하게 몸으로 부딪쳐 봐야지. 말하는 만큼이 아니라, 걸은 만큼이 인생이라 하지 않았던가.     


처음 한 달은 답답했다. 어디에 놓고, 어떻게 쳐야 하는지 모르니. 유튜브 동영상을 봐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 2개월째부터는 본격적인 천국과 지옥이 시작됐다. 집에서 스윙할 때는 잘하는 것 같아 우쭐한대, 막상 공을 쳐보면 ‘어쩜 이렇게 안 맞니’, 좌절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 번 냉탕을 다녀와 반성의 시간을 하다 보면, 뭔가 느끼는 바가 있다는…. 연습 더블로 고!     


클럽을 거실에 두고, 지날 때마다 휘둘렀다. 들에서 일하고 돌아와 소파에 드러눕고 싶어도, 일단 클럽을 먼저 잡았다. 가족들 다 자면, 마치 바퀴벌레 나오듯, 스멀스멀 기어 나와 자정이 될 때까지 연습했다. 당장 좋아지지 않더라도, 한 번에 0.01그램씩 살이 빠진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그렇게 두 달을 더 보내고, 백일이 넘어가니 몸에 감이 오기 시작했다.     


회전을 이렇게 해볼까? 이런 스윙 궤적은 어때? 끊임없이 몸으로 탐구하다 보면, 뭔가 확 좋아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 그럴 때 찾아오는 재미와 뿌듯함이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사춘기를 겪지 않고서는 성장할 수 없다. 주둥이만 까는 놈들을 가라, 나는 몸으로 부딪칠 테다! 오늘도 고요한 어둠 가운데 클럽을 휘두른다. 김사장, 김차장, 어때, 키가 보이는가?! _ 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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