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언 골프 26] 나이 마흔, 남자 셋, 골프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을 보면, 금요일과 토요일의 마무리 패턴이 다르다. 금요일은 긴장감이 고조된 채 끝나고, 토요일은 갈등이 일단락된다. 만약 금요일처럼 토요일에 끝난다면? 난 한 주일 동안 불안함에 떨지 모른다. 토요일처럼 끝나야 마음이 편하고, 희망도 꿈꾸지. 그런데 2020년을 며칠 안 남긴 시점, 나의 골프는 금요일 마지막 장면에 멈춰있다.
문제는 드라이버. 아이언은 얼추 맞는데, 이것은 어쩜 이리도 안 맞을까. 아이언과 드라이버, 스윙이 다를 게 없다는데. 역시 난 큰 놈이랑 맞지 않는 건가. 힘 빼고, 생각 비우고, 자연스럽게 몇 날 며칠을 휘둘렀고, 토요일 드라마를 찍기 위해 형님 연습장에 갔다. 언제나 연습장에 갈 때는 자신감 넘쳤는데, 이날은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해를 넘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역시 아이언은 잘 맞았다. 역시 드라이버는 잘 맞지 않았다. 함부로 절망하지 말자, 싸우려고도 하지 말자. 바둑 두듯이, 한 번 치고 장고의 시간에 들어갔다. 내적 긴장감이 한껏 고조됐을 때,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손잡이 위쪽 끝에 있는 작은 선, 그립을 잡을 때 기준 삼으라는 것 같은데, 그동안 나는 왜 저걸 보지 않았던 거지? 보지 않은 게 아니라 안 보인 거야.
선에 맞추어 클럽을 5미리 돌렸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드라이버가 너무 잘 맞는다. 아주 조금 돌렸을 뿐인데, 결과의 차이는 엄청났다. 퍽퍽! 연습장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는데, 형님이 서류 작업하러 들어왔다. “오, 안효원이 잘 치는데?!” 이날은 겸손하고 싶지 않아, 큰 소리로 웃었다. 스윙할 때, 어드레스 시 손목 모양을 생각하며 치니 더 좋았다. 토요일 드라마다!
마음속 밝은 미래 상상 ON! 그동안 드라이버를 잡으면 안 맞으니까, 칠 때마다 안 좋은 생각부터 했으니, 잘 맞을 리가…. 하지만 스위치 켜듯, 클럽을 돌려 희망을 봤으니, 이제부터 기분 좋은 상상만 해야지. 오늘은 얼마나 날릴까, 공이 되어 날아가는 기분은 어떨까. 남자 셋 골프 이야기는 얼마나 더 재밌을까. 2021년 ‘희망 ON’ 스위치를 절대 되돌리지 않을 것이다. _ 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