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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Feb 08. 2022

미나리, 원더풀

<미나리>(정이삭, 2020)


“데이빗, 뛰지 마!”


첫 장면에서 이 대사를 듣고 빵 터졌다. 나도 ‘사랑해’보다 아이에게 더 많이 하는 말이다. 애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아이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 엄마는 새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비가 새고, 태풍에 날아갈까 전전긍긍하는 것도 싫지만, 병원이 먼 게 문제다. ‘사랑해 당신을’을 부르며 미국으로 날아간 부부는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


제이콥과 모니카가 생각하는 천국의 모습은 다르다. 아내는 가족들이 모두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병원은 가까워야 하는 이유이다. 아빠는 자신이 성공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낯선 땅에 와서 ‘병아리 똥구멍’만 10년 동안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가족’은 하나, 방법은 ‘둘’, 천국은 멀기만 하다.


이들이 찾아간 교회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일단 교회는 길 잃은 양을 환영한다. 서로 대하는데 울타리가 없다. 이는 모니카가 바라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목사는 다른 길 잃은 양 찾기를 종용한다. 삶이 고달파 쉬러 왔는데, 은행의 수, 슈퍼의 얼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단다. 이는 제이콥의 마음, 전도를 하듯 성과를 내야 천국에 닿지 않을까.


부부의 갈등은, 아이러니하게도, 둘이 가장 바라던 일이 이뤄진 상황에서 폭발한다. 데이빗의 심장이 튼튼해져(strong) 수술이 필요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한인 식료품점에서 제이콥의 농산물을 팔겠다는 사장의 말을 들은 순간, 생각의 차이로 인해 모니카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선언을 한다. 그리고 찾아온 큰 시련, 이들은 천국의 문 앞에서 주저앉고 말 것인가?


작품을 보면서 천국의 ‘시간성’을 생각했다. 천국은 객관적 공간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의 영역이 아닐까.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어긋나 버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다른 모습이라도 서로의 시간을 기다려 준다면, 어쩌면 지금, 여기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 어디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모두가 어디서나 누릴 수 있는 천국이길. 미나리, 원더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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