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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Oct 23. 2023

신세계

[깜언 베트남 8]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시즌 3)

“파하하하!


드라마틱한 파를 기록하고, 웃음소리가 바뀌었다. 참, 사람들이 이래서 골프, 골프 하는구나. 그동안 말아먹은 열두 개 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7번 홀을 기준으로 공기가 싹 바뀌었다. 바짝 추격하던 다음 팀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T 선배가 어깨를 툭 쳤다. “몸이 이제 풀렸나 봐요?” ‘풀린 정도가 아니라 저 이렇게 잘 쳐 본 적 없어요.’라고 답하기 그래, 그냥 웃었다. 


홀인원 하면 항공권을 주는 8번 홀에 도착했다. 파만 해도 이리 좋은데, 홀인원을 하면 정말 날아가는 기분이겠지? ‘어차피 홀인원은 실력이 아니야, 운이야!’를 외치며 쳤는데, 그린 앞 벙커에 빠졌다. 음, 실력 없이 운만 있어서는 안 되는군. 주제도 모르고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한 나 자신이 가소롭고 안쓰러워 웃음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벙커는 단번에 나이스 아웃!


지난번 그린을 가운데 두고 벙커와 러프를 왔다 갔다 했던(일명 ‘와리가리’) 지옥의 홀이었는데, 이번엔 심기일전하여 보기로 마무리. 놀랍게도 이것이 오늘 첫 번째 보기. 그럼 그동안 나는 얼마나 지옥의 라운드를 힘겹게 치르고 있었단 말인가! 그런 내가 이번엔 안쓰럽기만 하여 쓰담쓰담, 하다 보니 이번 홀에서는 가장 좋은 스코어를 기록했다. 첫 오너(Honor)가 되었다. 


라구나 랑코는 9번 홀이 아주 아름답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필드, 논과 개울을 지나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볼 수 있는 홀이 바로 여기다. 그곳에 드라이버를 들고 맨 앞에 서 있는 사람 누구? 바로 나, 안기자!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은 산과 바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홀의 처참함을 쉽게 잊을 수 있는 나의 단세포적인 기억력 덕분이다.


어김없이 나의 캐디는 나의 뒤에서 방향을 봐주었다. 이제는 7명이 나의 든든한 응원군이 되었다. 아니, 나도 나를 응원하니,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 향하고 있다. 힘차게 탁! 나이스 샷! 드라이버 티샷이 제법 먼 거리 정중앙에 떨어졌다. 두 번째 샷은 9번 오케이! 천천히 탁! 나이스 샷! 홀컵 2미터 앞에 떨어졌다. 김차장이 신나서 소리쳤다. “버디 찬스야, 버디 찬스!”


버디 찬스? 파에, 오너에, 버디까지? 내 골프 인생에 신세계가 펼쳐지는 순간, 누가 사진을 찍어줄 것 같지는 않고, 조용히 카트에 가서 휴대폰을 가져왔다. 이번 홀을 잘 담아가야지.  살다가 힘들 때 꺼내 먹어야지. 일행이 홀 아웃을 하고 버디 찬스맨 등장했다. 신중하게 탁! 땡그랑! “나이스 버디!” 모두가 외쳤다. 나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소리쳤다. “아임 버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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