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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Oct 27. 2023

아이, 좋아

[깜언 베트남 10]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시즌 3)

“수고했습니다!”


라구나 랑코 라운드를 마치고 클럽 하우스에 돌아왔을 때, 어둠은 이미 짙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열기를 다 식히지 못했고,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맥주잔을 부딪치는 우리의 표정은 모두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4시간이 넘는 18홀의 여정, 한 사람이 희로애락을 겪기에 충분하며, 한 사람의 어떠함을 보기에 넉넉히 긴 시간이다.


이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19번 홀, 뒤풀이 자리.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먹고 마시는 축제의 장. 메뉴는 무려 랍스터이다. 호스트는 김차장이 되었다. 애초 계획은, 게임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네 명이 파트너를 바꾸어 가며 승부를 펼치는 것. 하지만 안기자와 김사장의 긴장감은 외부의 도움 없이도 상한가를 기록했고, 결국 김차장과 T 선배의 1대 1 대결이 되었다.


김차장은 “안기자가 생애 첫 버디를 했는데, 당연히 친구인 내가 쏴야지!”라며 웃었다. 그동안 좋은 곳을 많이 데려가 오늘은 어떤 식당일까 궁금했다. 차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한참을 달렸다. 만약 김차장이 옆에 없었으면 납치를 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을 여정. 그리고 만난 풍경은, 좋았다. 검은 바다의 파도 소리, 모래사장 위에 놓인 대나무 자리.


거기서 우리는 또 다른 T 선배를 만났다. 말할 때 차분하고, 공칠 때 신중하기만 했는데, 랍스터를 두고 가게 사장님과 협상을 벌이는 모습은 세상 재밌었다. 모든 게 낯선 풍경을 넋 놓고 보는데, 랍스터에 게에 조개, 굴까지 바구니에 잔뜩 담겼다. 옆에서 김차장은 “더, 더!”를 외치며 흥을 돋우었다. 자리에 앉은 우리는, 직원을 귀찮게 하지 않게, 맥주 20개로 시작했다.


“안기자 경험이 쌓이면 앞으로 잘 칠 것 같아요. 임팩트가 좋아요.” T 선배가 말했다. 입도 즐겁고 귀도 즐거운 지금 나의 기분은 드라이버를 맞은 듯 멀리 날아갔다. 뭐지, 왜 이리 좋지?! 낯선 감정의 정체를 알기 위해 잠시 바닷가를 걸으며 생각했다. 아, 맞아. 나 지금 애 대접받고 있는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잘한다, 잘한다, 우쭈쭈 해주는 아주 깊은 사랑….


공 못 쳐도 ‘괜찮다.’고 하고, 조금 잘 맞으면 ‘아주 잘했다.’하고, 심지어 내 수고 없이 먹을 것까지 챙겨주니, 아주 오래전,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은 아이가 된 기분이다. 어른이 되고 좋아하는 것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고, 부정(평가)도 많이 당했는데…. 아이, 좋아. 매일 그럴 순 없지만, 일 년에 3일은 그래도 될 거야. 지금 이 순간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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