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프렌들리 여행자는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탕룽 왕궁(Hoàng thành Thăng Long), 이(lý) 왕조가 하노이에 자리를 잡고 세운 궁궐이다. 우리로 따지자면, 조선시대 경복궁과 같은 곳, 1010년에 세워졌다. 이후 천 년의 시간 동안 많은 질곡을 몸소 겪었다. 19세기 중반에 시작, 약 1백 년에 걸친 프랑스와의 전쟁, 식민지 시절, 제국주의 야만적 대포에 많이 훼손됐다.
처음엔 셋이서 나란히 걸었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한두 번 건너면서 차이가 벌어졌다. 하노이 길에 적응한 김차장은 거침없이 걸었고, 김사장과 안기자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길 건너에서 우리를 인자하게 바라봤다. 수많은 차와 더 많은 오토바이들, 횡단보도 신호를 무시하는 건 기본. 이 아수라장에서 어찌 저리도 자유로울 수 있는가! 오늘 나는 이 길을 건널 수 있을까?
김차장의 ‘하노이 길을 건너는 방법’ 특강이 시작됐다. “신호나 오토바이는 보지 말고, 차만 봐. 오토바이는 알아서 피해 가는데, 차는 절대 멈추지 않아. 그니까 무조건 차만 봐. 알았지?” 유치원생이 된 기분으로 차만 보기 시작했다. 내가 차보다 빠르겠다 싶어 뛰어가려 하면, 김차장이 “어, 어”하면서 손목을 잡았다. 길에서 머무름 없이 지나가는 하노이인들 부러웠다.
의욕이 앞섰다. 베트남 사람과 빨리 동화되고 싶어 그들의 속도를 쫓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빵빵’ 경적과 김차장의 다급한 목소리. 뒤를 보니 길 건너기를 초월(포기)한 듯 평안한 김사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바로 저거!’ 다리에 힘을 빼고, 느긋한 마음으로 거리를 응시했다. 혼돈으로 보이던 길에서 규칙이 보이기 시작했다. 뛰지 않아도 건널 수 있게 됐다.
탕룽 왕궁 안 웅장한 성문인 도안몬에 올랐다. 상쾌한 바람 사이로 무리 지어 명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가만히 각자의 세계에 빠져 있는 모습, 이것이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에 빠지지 않고, 손이 가는 대로 선택하지 않고, 홀로 머물지 않고 함께 하는 것. 거리를 두고 깊이 생각하다 보면, 빠르고 큰 변화 속에서도, 분명 나의 길이 보일 것이다.
오래된 건물을 보면 절로 숙연해진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지켜봤을 희로애락, 가만히 보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