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들

[깜언 베트남 6]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

by 안효원

유유자적 왕궁을 거닐고, 희희낙락 거리를 걷다가 호찌민 묘소(Lăng Chủ tịch Hồ Chí Minh)에 도착했다. 하노이 다른 곳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달리 경비가 삼엄했다. 바딘 광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라이터를 놓고, 보안검색대를 지나야 한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는 들어갈 수 없다. 무료입장. 누구나 들어올 수 있으나,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라 침묵으로 말한다.


탁 트인 광장에서 거대한 묘소를 마주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내가 죽은 후에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 시신은 화장해 달라’고 했대.” 깨시민 김사장의 깨알지식이 폭발했다. 하지만 베트남 국민은 호찌민을 살아있는 모습으로 남겨 놓고, 모시고 있다. 음, 뭐가 맞을까. 마지막 뜻을 지키는 것과 그것을 어기고 생전에 남긴 뜻을 지키는 것.


호찌민은, 다른 위대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보통의 집에서 태어났다.(1890) 그는 조국의 역사를 알고자,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세계 각지에서 공부했다. 기술훈련원, 수습요리사, 청소부, 웨이터 등 살기 위해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서른 살에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 재프랑스 베트남인 애국자단을 조직한 후 남은 인생을 오롯이 베트남 독립과 통일 운동에 바쳤다.


재밌는 것은, 내가 본 7종 이상의, 베트남 지폐에 모두 그의 얼굴이 있다는 사실. 이거야말로 ‘호찌민으로 대동단결’. 역사적 평가와 별도로, ‘호 아저씨’라 불리던 검소한, 소탈한 한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사랑 아닐까. 또, 잘 알지도 못하고 이러는지 모르지만, 부러웠다. 좋은 사람을 좋은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게. 그는 여전히 사람들 기억(지갑) 속에 살고 있다.


그는 나이 마흔 즈음 베트남 공산당을 창당했다.(1930) 1969년 심장병으로 사망한 인생의 여정에서 보면 딱 중간. 그를 응시하고 있는 김사장, 김차장, 안기자의 나이가 그렇다. 그만큼 큰일을 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수많은 한 사람을 위해 애쓰고 있다. 세상이 우리를 기억하지 않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여행이 우리를 기억할 테니!


20200111_132314.jpg 살다보니 하나의 사물을 하나로 보고, 한 사람을 하나로 기억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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