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물건

[깜언 베트남 17]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

by 안효원

뷔페 점심 먹고, 와인 더 마시고, 수다 떠는 사이, 석회동굴이 있는 섬에 도착했다. 섬 자체가 하나의 산이라 오르는 길이 꽤 가팔랐다.(우리가 참가한 하롱베이 투어엔 세 가지 코스가 있다. 동굴과 전망대 올라 보기, 카약 타기. 치마, 슬리퍼 등 예쁨은 배에서 가능하지, 섬에 오르면 고생이 된다.) 와인의 힘으로 하악하악, 동굴에 도착하니, 와우, 기운 뺀 보람이 있구나.


오페라 공연을 해도 충분할 넓이에, 웅장한 석주와 기암괴석이 가득했다. 가이드는 불빛으로 벽 곳곳을 가리키며, 숨은 그림 찾기를 했다. 불상, 원숭이, 대만 사자 등 다양한 형상을 보여주는데, 이건 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관대한 여행자는 웃으며 넘어가다 진짜 웃긴 풍경을 목격했다. 김사장이 맨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가이드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3년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때 저렇게 공부를 했으면, 김차장이 아니라 김사장이 서울대를 갔겠지. 웃기는 표정보다 진지한 표정이 더 웃기는 김사장은 학창 시절 장난꾸러기, 혹은 내가 감당 가능한 경계에 딱 걸친 돌아이. 대학생 때 장발에 학생운동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젠 끝이다 싶었다. 하지만 일찍 결혼하고, 일찍 사업을 시작한 김사장.


사회적 기업으로 유니폼 업체를 운영하며 십수 명 직원의 생계를 책임질 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주려고 애쓴다. 매년 가을이 되면 추석에 직원 선물 준다고 내게 쌀 셔틀을 시키는 고마운 친구. 사람이 이렇게 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과 노력이 있었을까, 하고 애틋해질 무렵 김사장이 한껏 상기된 모습으로 다가왔다. “저기, 큰 바위 물건이 있어!”


‘19금 바위’ 하나 높게 솟았다. 크고 세밀한 것이 과연 자연의 신비. 술렁인 것은 비단 우리뿐 아니다. 나이, 성별, 피부에 상관없이 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 감탄했다. 김사장은 다시 돌.. 아니, 장난꾸러기로 돌아가 핑크빛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뒤처진 나이 마흔, 남자 셋은, 수학여행 버스 맨 뒷자리 앉은 애들처럼, 건전한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동굴을 웃음소리로 채웠다.


20200111_130949.jpg 자연과 시간이 만든 석회동굴에 다양한 캐릭터가 숨어있다. 숨어있지 않은 것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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