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롱베이 올로케 호러무비

[깜언 베트남 19]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

by 안효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무슨 말을 해도 이 평온보다 좋을 수 없다. 얼마 후, 전직 영화기자가 정적을 깼다. “김차장, 공포영화 공식 알아?” 무서워서 잘 보지도 못하면서, 괜히 아는 척. “이런 데가 딱 좋아. 누가 봐도 아름답고 평화롭잖아. 그런데 사건이 벌어지면? 분위기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수직낙하. 공포는 수직상승.” 하롱베이 올로케 호러무비는 이렇게 시작됐다.


‘먼저 주인공은 젊은 연인이 좋아.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모처럼 휴가를 내 이런 파라다이스에 오는 거야. 때마침 사람도 별로 없네? 그럼 뭐하겠어, 사랑을 나누겠지? 아름다운 연인이,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사랑, 결점은 없는 완전한 행복. 이제 카메라가 쓰윽 빠지는데, 멀리서 남자 둘이 이걸 보고 있어. 눈이 좀 빨개. 관객들은 눈치채지. 심상치 않구나.


먼저 그들이 연인에게 다가가. 뭐 특별한 말도 없어. 그냥, 좋아 보인다, 좋은 시간 보내라. 착한 동네 형들처럼 친절히 사진도 찍어줘. 그러다 돌아서 웃는 얼굴이 갑자기 정색. 그리고 구름이 끼고, 비가 와. 일단 여기서 여배우 옷이 다 젖어야 해. 왜 그런지는 몰라. 그냥 그래. 바람이 불어 배가 넘어지는데, 남자들이 나타나.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지. 그런데,


여자만 구하고, 남자는 안 구해. 왜? 이들은 원래 이 연인이 싫었으니까. 자기들은 불행한데, 세상 행복해 보이는 저들이 자신을 너무 비참하게 만든 거야. 사실, 그 연인도 현실에서 충분히 힘들게 사는데 말이야. 여기서 남자가 여자를 어떻게 구하느냐에 따라서 하드고어나 액션물로 바뀌지. 혹시 알아? 알고 보니, 남친이 스파이더맨, 남자들 임자 잘못 만나 개고생.’


한 연인이 룰루랄라 바다를 누볐다. 우리는 유유히 따라가 말을 걸었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해맑은 표정으로 고맙다 말하며 휴대폰을 건네고, 찰칵. 이제, 일부러 떨어뜨리고, 그걸 줍다 카약이 넘어가면 된다. 근데 안기자는 폰 건네느라 바들바들, 김차장은 카약 중심 잡느라 삐질삐질. 공포영화는 끝내 로맨틱 코미디가, 우리는 인심 좋은 아저씨 엑스트라가 되었다.


20200111_141853.jpg 셀카만 잔뜩 찍는 젊은 연인을 보고 좋은 사진 찍어주고 싶은 우리, 나이 참 잘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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