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대로 놀자! 하롱베이처럼

[깜언 베트남 20]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

by 안효원

티탑섬(Titop island) 전망대에 올라 천국을 경험했다. 무엇보다 오르막길이 끝나서 좋았다. 말이 좋아 계단이지, 이건 거의 등산이다. 김차장 1등, 김사장 2등, 안기자 3등으로 올라갔다. 김사장 중간에 뒤로 넘어질까 봐. 가볍게 지나가는 소년을 보며, ‘아, 이래서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간다고 했구나!’. 집에서 ‘돼지’라 불리는 사내는 존재가 무거워 오르기 힘들다.


전 세계 다양한 인종이, 힘들게 올라온 이곳. 시원한 바람, 사람들 웃음소리, 탁 트인 하롱베이. 내가 천국을 기대하는 두 번째 이유는, 수제자 괴파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에 대한 이해’다.(첫 번째는 고난의 끝.) 세상에 이해 안 되는 일이 너무나 많아, 이해 포기. 전망대에서 하롱베이가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천국에서는 감춰졌던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드러나겠지.


항으로 향하는 길, 남자 셋은 별말이 없었다. 수다 떨 만큼 떨고, 지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지극한 안정감.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때, 지옥을 보았다. 눈앞의 바다가 아닌, 좁은 내 마음속, 때로는 바다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아비규환. 각자의 자리에서 고요히 서 있는 섬들과 달리, 마음속 섬(사람)들은 서로 소리치며 할퀴고 있다. 대체 나를 지옥에 떠미는 건 무언가.


뼛속 깊이 박힌 ‘경쟁 DNA’. 내가 내린 결론이다. 어려서 칭찬의 맛을 본 나는 인생을 잘해야 하는 것, 즉 시험으로 이해했다. ‘여유’는 ‘게으름’이, ‘나다움’은 ‘뒤처짐’이 되었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 ‘판단’과 ‘비교’에 익숙해졌다. ‘타인과 거리 조절’이 어려웠고, 결국 ‘내 자리 찾기’를 실패했다. 젊은 시절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신 건, 가면을 쓴 나를 잊기 위한 몸부림.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이 참 싫었다. 그때, ‘나 생긴 게 뭐, 어때서?’라고 맞받아칠 자신감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생의 절반 즈음에서라도 그 마음이 생긴 건 정말이지 다행이다. 술 먹고 개 되는 모습을 보고도 떠나지 않은 김사장, 김차장이 있는 건 더 다행. 야, 우리도 할 수 있어. 생긴 대로 놀자! 하롱베이처럼. 그때 천국의 소리가 들렸다. “라면 먹고 갈래?”


20200111_150731.jpg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충돌하지 않는 섬과 배들, 내가 꿈꾸는 천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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