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남자 in 하노이 재즈카페

[깜언 베트남 22]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

by 안효원

꿀잠 대신 택한 맥주, 고래처럼 마시리라! 십 년 만의 재즈클럽, 영혼까지 흔들리라! 9시가 넘어 도착한 하노이 오페라하우스 옆 빙밍재즈클럽(Binh Minh Jazz Club). 와우, 이곳은 We are the world,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호주 젊은 연인의 양보를 받아 우리는 구석진 곳에 겨우 앉았다. 고마운 마음에 말을 걸지만, 아, ‘south’를 ‘Swiss’로 잘못 들어 1차 의기소침.


메뉴판을 열었다. 낮엔 19,000동, 공연이 열리는 시간엔 89,000동. 우리 돈으로 4만 원이 넘는 건가? 아무리 입장료가 없어도 그렇지, 너무 비싼 거 아냐? 어차피 내가 낼 거 아니지만, 김사장 덤터기 씌울 수 없어서 소심하게 맥주 한 병. 아, 메뉴판 보기도 싫다. 2차 의기소침. 밖에서 하노이 밤에 푹 빠진 김사장이 들어와 웃으며 말했다. “안기자, 너도 노래 한 곡 해!”


원하면 밴드 연주에 맞춰 노래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놈은 내 노래 언제 들어봤다고 충동질이야. 아까 고속도로에서 내 솜씨에 반한 건가, 아니면 엿 먹이려는 걸까. 노래라면, 한 달 연습하면 어떤 곡도 소화할 수 있는 실력.(듣기 좋은지는 모름.) 10년 전 터키 에페스 야외극장에서 노래하는 여인을 보고 감동받아, 다음엔 꼭 하리라 다짐, 맹연습한 노래가 하나 있다.


이하이의 ‘한숨’. 사는 게 힘들어도 위로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불러주고 싶어 연습하다, 혼자 울기만 수십 번.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하지만 여기는 재즈클럽, 가요를 할 수 없고, 다른 재즈 하자니, 한국 손님들이 한숨 쉴 것 같고, 아, 이번에도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긴 글렀다. 3차 의기소침.


피곤해 벽에 기대 쉬는데 호주 연인이 말을 걸어 즐겁게 대화했다. 계속 노래하라고 부추기는 김사장 눈빛에서 용기를 내라는 진심이 엿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메뉴를 다시 보니, 맥주가 4만이 아닌 4천 원. 아, 한 시간 반 동안 나 홀로 문제적 남자가 되었다니! 시원한 맥주 세 모금을 넘기며, 편하게 재즈를 들었다. 한순간 마음이 풀어지고, 웃음이 났다. 그래, 충분하다.


20200118_012314.jpg 재즈클럽 화장실 앞에서 만난 여인들과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건, 우리가 여행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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