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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Mieum Jan 26. 2022

08. 군대는 다녀와야 사람 구실을 한다고?

사회생활 하는 법은 군대에서 다 배웠지,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돼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다보면 군대 주제가 가끔 나오는 순간들이 있고, 그 순간을 남자들은 꼭 그냥 안 넘어간다. 자기 군대 얘기에 혈안이 되거나, 서로 어디에서 군생활을 했냐며 핏대를 세우기 일쑤다. 뭐, 자기 경험 이야기야 할 수도 있다. 힘들었거나 재미있던 얘기 할 수도 있지. 그러나 꼭 군대 얘기하다보면 꼭 나오는 맥락.



“사회생활 하는 법은 군대에서 배웠고, 사람구실 하려면 결국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돼.”



 또한 회사 등에서 일을 못하는 사람이나 눈치가 부족하고 사회성 없는 사람을 지칭할 때도 군대 안 다녀왔냐는 식으로 비난하는 일이 많다. 결국 사람은 군대를 다녀와야 사회성이 있고, 일 잘하고, 눈치 빠르고, 위아래 서열 잘 맞추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묘사되는 서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내러티브에 여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성별에 따라 교육을 나눠 받는 것도 아닌데, 왜 남자 한정 군대를 다녀와야만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할까? 여성은 기본적으로 군필자 남성보다 일을 못하고 사회성이 떨어지고 참을성이 없다는 뜻일까?



 같은 내용도 다르게 물어보면 다른 답이 나올 때가 있는데, 묘하게도 이 부분이 그러하다. 이 사회의 인식에는 적어도 그러하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사회생활 부분이 떨어지고, 일처리를 잘 못하고, 참을성 없고, 잘 울고, 잘 포기하고, 윗사람들한테 잘 게기고 그런다고 여겨진다. 믿겨지지 않으면 회사로 다시 돌아가서 잘 관찰해보기를 추천한다. 같은 말을 해도, 같은 성과를 내도, 같은 리더십을 갖고 있어도 여성 직원은 남성 직원보다 늘 능력과 성과를 덜 인정받는 평가를 받는다. 여성들은 항상 “아무래도 남자들에 비해서는 좀 감정적이고, 일할 때 가끔 공과 사를 구분 못하고, 좀만 힘들면 징징대고, 일 처리를 개인 감정에 따라 다르게 한다”는 평가를 평생 받아오지 않았는가.




 권인숙 저자의 <대한민국은 군대다> 라는 책은 대한민국의 징병제 및 군사주의, 군대문화에 대해 여성주의적 및 젠더적 관점에서 고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오찬호 저자의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도 군대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풀어내고, 자신의 군대생활 경험 및 한국 남성들의 호모소셜 문화에서 군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즉 군대는 이 대한민국의 가부장제를 끈끈히 유지하는 원동력이자 핵심 모터라고 비유해도 손색없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남성들은 군대에서 호모소셜 (남성문화) 을 학습하며, 사회의 부품이 되는 법을 배운다. 즉 ‘정상 남성’이 되는 것을 배워 길들여져서 나오는 것이다. 일 처리와 판단에 있어서 본인 주관은 없어야 하고, 부조리와 불합리에 맞서다가는 하극상이 되어버리며, 서열관계가 매우 뚜렷하며 상명하달식 복종에 익숙해지고, 본인도 동료가 아닌 부하병사들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는 데에 익숙해진다. 우리는 이것을, ‘사회 생활 잘하게 돼서 나오는 거네’ 라고 생각하기보다, ‘저런 군사주의적/비인간적 방식으로 굴러가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문화라면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 엄두조차 못 내고 상상력의 빈곤이 오는 데에는, 군대문화가 이미 너무도 철저히 우리 사회를 세뇌시키고 영향을 지속적으로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군사주의적 문화가 여전히 이 사회의 주축이 되는 모터로 작동하고 있기에 군대는 ‘다녀와야 제대로 된 사람이 된다’며 끊임없이 <신성시>되고, 동시에 모든 ‘정상적’인 남성 구성원은 선택의 여지 없이 징병제로 다녀와야 하는 곳이기에 <여자들은 안 가는 곳>으로 해석된다. 신성시되는 곳과 남자들만 가는 곳.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수식어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군대란 폭력적이지만 신성시되는 이 사회의 모터이며, 또한 여전히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 이승만 전대통령이 맨 처음 징병제를 도입했던 1951년 한국전쟁 직후, 여성 시민은 예산 부분의 이유 등으로 징병 대상에서 빠지게 되었고 이는 곧 여성시민은 ‘군필자=사회 생활에 더 적합한 정상시민’ 논리에서도 마찬가지로 배제됨을 뜻했다. 회사 채용에서도, 승진과 연봉 책정에서도, 능력 평가에 있어서도, 이 사회는 군대를 다녀온 사람만을 적합한 인간상으로 전제하며 인식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당신에게 선택지가 있었다면 ‘평생 2등시민으로 살며 군대 2년 안 가도 되는 삶’과 ‘군대 2년 다녀오고 평생 1등시민으로 사는 삶’ 중 어떤 것을 택하겠는가.



 한편 남성들은 본인들만 징집되는 것이 확실히 불평등하다 여기지만, 한편 여성들도 징병제에 포함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명확히 내놓지 않는다. ‘여자들이 군대에 간다면’ 이라는 제목의 남초 커뮤니티 사이트들의 게시글들에서는 “여자들은 분명 가서도 화장하게 해달라 할거고, 화장품과 세면도구 좋은 걸로 달라고 떼를 쓸 것이고, 훈련받다 힘들다고 울 것이고” 등등 오히려 군대를 ‘여자들이 올 데가 아닌 곳’으로 상정한다. 곱게 말하면 “에이~ 여성분들은 군대 생활 힘들죠 ㅎㅎ”고, 나쁘게 말하면 “무슨 여자들이 군생활을 버텨ㅋ 자기들끼리 수다떨고 하극상이나 일어날걸” 이다. 즉 군대 가는 것이 억울하다는 남성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여자들도 동등하게 군대를 보내달라는 게 아니라, ‘군대가서 고생하는 우리를 인정해주고 대우해 달라’일 뿐.




 정리하자면 군대 내러티브는 “군대? 가기 싫은 곳이지만 ‘사나이’라면 다녀와야 인간 구실을 하지.” 와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전반적으로 사회성 떨어지고 일을 잘 못하는 경향이 있지.” 로 정리될 수 있다. 후자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성차별이 있다 느껴져 전혀 그렇지 않다고 펄쩍 뛰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전자에 대해서는 나름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하곤 한다. 사실은 후자의 문장을 교묘하게 바꿔놓은 말일 뿐인데 말이다.



“아무래도 군대 안 다녀온 사람들은 티가 나죠, 좀 사회생활에 있어서~”

“맞아요, 군대를 다녀와야 그 통하는 말 같은게 있어요~”

“군대를 안 다녀온 사람들은 좀 철없게 굴고 그런게 있어요 솔직히.”



즉 위와 같은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군대 다녀온 사람을 ‘사회화 된 인간 완성형’으로 여기는 발화를 계속 하는 것은 언뜻 보면 그저 군대 얘기 좋아하는 남자로 보이지만 사실은 1) 군사주의의 폭력적인 징병제에 대한 공감과 재생산, 2) 애초부터 징병제에서 배제되어 있는 여성을 ‘미완성형’ 인간으로 모는 여성혐오적인 내러티브가 속해 있다는 것이다.




그냥 평범한 군대 얘기인데 무슨 또 이게 여성혐오까지 가냐고? 이게 정말 쓸데없이 오버하는 것으로 느껴지고 예민한 사고방식이라 느껴진다면 당신은 안타깝게도 이미 굉장히 둔한 사람이다. 일상 속에서 언젠가 다시 군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당신의 머릿속에서 한 번쯤은 다시 이 글이 떠오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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