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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Mieum Jan 20. 2022

01. 유유상종과 동상이몽 : 조화로운 페미니즘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건설적이고 유의미한 관계를 위해



유유상종.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에게 끌리며 결국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끼리 모이게 된다는 뜻이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세상을 새로이 바라보기 시작한지 어느 새 햇수로 5년 차가 되었다. 그동안 독서모임, 세미나, 단체 활동, 캠프, 오프라인 집회 활동 등 젊은 페미니스트들과 교류를 해 오며 나도 모르게 ‘비슷한 깃털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 꽤나 익숙해졌다. 



동상이몽. 페미니즘의 인권감수성이나 교차성이라는 것이 있으나 결국 구성원 모두가 똑같은 감수성을 가질 수는 없다. 사회에서 약자들이 갖는 경험들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비페미니스트나 안티페미니스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그 균열에서 오는 거리감은 종종 느껴진다. 누구나 당사자성이 조금씩 다르고 서 있는 위치가 다르기에,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불편함을 공감하면서도 다른 가치와 경험을 떠올린다. 



첫번째 상황, 여기 어떤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경험을 나누는 모임을 갖고 있다. 

한 명이 이렇게 말한다. 

“아니 나 보고, 남친이랑 연애하면 같이 공원에서 달리기 운동 같은 걸 하고 싶지 않냐고 묻는거야. 진짜 어이 없고 불편했어.” 

이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이라면 대부분 아마 이 말의 어디가 문제인지 도통 알 수 없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불편함을 공감하는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도 누군가는 ‘맞아, 남친이 있는지 없는지도, 사귈 생각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면서 저렇게 말하네.’ 라며 공감한다. 누군가는 ‘아니 사귀는 사람 성별이 남성인지 뭔지도 모르면서 남친이라고 물어봐?’ 라는 생각을 하며 공감한다. 그 옆의 누군가는 ‘아니 왜 꼭 연애를 해야 한다고 가정하듯 유성애규범적으로 말하지?’ 라며 공감한다. 또 누군가는 ‘왜 항상 누군가가 달릴 수 있는 신체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지?’ 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또 다른 상황. 누군가 남성 불청객 한 명이 이 모임에 불쑥 찾아 와, “어디 여자애들이 여자답지 않게 이렇게 괄괄하고 기쎄게 굴어?” 라고 말을 던진다. 

누군가는 ‘왜 여자가 항상 여자답게 굴어야 한다 생각하지? 여자다운 게 뭐지?’ 라는 생각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항의를 한다. 그 옆의 누군가는 마음 속으로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멋대로 나를 여자라 패싱하고 상정하지?’ 하며 불편함을 느낀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불청객의 말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태도 자체나 무례한 언행에서 젠더권력을 강하게 느끼고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아마도 ‘퀴어-여성-페미니스트 모임’, ‘퀴어-비건-여성 모임’, ‘퀴어-장애여성 모임’ 등 더욱 세분화 된 집단들이 점점 더 많이 생기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가부장제와 남성-유성애-헤테로-비장애인-인간동물 중심적 사회에서 다양하게 불편함을 느껴 광장에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이지만, 결국 광장 내에서 같은 색의 깃털을 가진 자들이 모인 곳으로 다시 한 번 더 이동한다. 성소수자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시스 헤테로 여성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종종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고, 비건 페미니스트들은 비채식인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오래 공존하기 어려우며, 장애여성 페미니스트들은 비장애인 사이에서 더욱 피로함을 느끼기 쉽다. 그렇기에 자신이 더 많이 소모되고 지치고 침식되는 것을 방지하고 싶다면, 자신과 같은 깃털을 가진 소중한 동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둥지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 페미니즘의 지속 가능한 운동과 발전, 그리고 연결을 위하여 각 집단 간의 교차성 및 연대가 필요하겠다.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을 만나본 페미니스트라면, 똑같은 ‘빻은’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두 다른 경험을 떠올리면서도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각자 갖고 있는 경험과 당사자성이 다른 데에서 오는 묘한 동상이몽이다. 

페미니즘은 자신과 다른 경험을 해 온 사람들 속에서 같고도 다른 동질감을 만들어 내는 동상이몽의 힘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나와 같은 깃털의 사람들을 비슷한 경험의 영역으로 묶어 주기도 하는 유유상종의 둥지를 만들어 준다. <동상이몽>의 연대와 <유유상종>의 편안함이 균형을 이룰 때 이 사회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더욱 건설적이고 유의미한 페미니즘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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