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음 Mieum Jan 23. 2022

02. 품평과 숫자 : 문제를 모르는 어떤 의사에 대해

숫자가 가진 힘이란 이렇게 크다


출처 - 트위터

며칠 전 트위터를 잠시 소란스럽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의사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한 계정이 올린 트윗 때문이었는데, 첨부 이미지 내용대로 ‘오늘 수면 위내시경한 175cm 70kg 여자분인데 너무 날씬해서 깜놀. 178cm 67kg인 나는 왜 이리 마르고 뚱뚱한가?’ 라는 글을 올린 것이 화제가 되었다. 


현재 “수면 위내시경한 의사가 몸평하는 건 당사자가 알고 있느냐”, “의사 자격이 없다”, “품평하지 마라” 등의 힐난을 받고 의사는 일단 해당 트윗을 삭제했지만 한편 굉장히 억울한 모양이다.       



이후 의사가 억울해 하는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 (욕하고 술먹고 깽판치며 노상방뇨를 한다는 구체적인 예시를 들며) 본인이 아무리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어도 그것이 의사로서의 자질이나 직업윤리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 본인은 환자를 ‘품평’한 것이 아니라 의사로서 건강의 지표를 나타내는 체형 얘기를 한 것이라는 것. 우선 이 의사는 현재 이렇게 나쁜 의미의 큰 관심을 받아본 일이 많이 없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놀란 나머지 본인을 방어하기 급급하여 ‘개인정보란 무엇인지’, ‘저질스런 의미에서의 몸매 품평이란 무엇인지’ 와 같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들로 논점을 흐리고 있으니.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면으로 의사에게 지적하는 답변을 남겼지만, 개인적으로 처음 저 트윗을 접했을 때 느껴졌던 가장 큰 유해함은 다름 아닌 ‘숫자에서 오는 가치판단의 위험성’ 이었다. 만약 의사가 트윗에 <오늘 수면 위내시경한 여성 환자, 체중에 비해 날씬해 보이는 몸을 갖고 있었다.> 라고만 썼더라면 단지 수면 중에 있는 여성환자의 신체에 대해 왈가왈부한 남성권력에 대한 비판 정도만 받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수면 내시경이라는 무방비 상태에 있는 여성 환자를 성적으로 희롱하고 몰래 불법 촬영을 하기도 하는 남성 의사들의 사례들도 꽤나 많이 있으니. 어쨌든 저 의사는 175cm 70kg 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공하며 ‘그런데 너무 날씬해서 깜놀.’ 이라는 평가를 더했다. 이것이 어떤 추가적인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곳은 외모지상주의와 여성혐오가 더해져, 세계에서 가장 여성들이 마른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이다. 심지어 잘못된 다이어트 상식과 건강 상식이 휘몰아 쳐, 많은 여성들이 잘못된 숫자 기준선에 갇혀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외모, 체지방율과 사이즈에 목 매는 것도 위험한데, 하필 그 중에서도 가장 체형과 관계가 없는 ‘체중’에 목숨을 건다. 48kg, 그 놈의 48kg. 심지어 ‘여자가 50kg 넘으면 통통한 거 아닌가’ 라는 멍청한 말이 아직까지도 쉽게 나오는 사회다. 같은 체중이어도 근육량, 체형, 체지방율, 키 등에 따라 정말 다양한 겉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러하다. 왜냐하면 이 사회에서 가장 직관적이고 여성의 체형을 나타내는 데에 가장 많이 통용되는 기준이니까. 


이토록 구체적인 ‘체중계 숫자’에 가뜩이나 영향을 많이 받는 사회에서 <175cm 70kg 여자분인데 너무 날씬해서 깜놀.> 이라는 트윗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장담컨대 대부분의 여성들은 본인의 키와 몸무게를 무의식중에라도 다시금 떠올렸을 것이다. 아, 70kg 여자는 날씬한 바디셰이프를 갖고 있으면 ‘깜놀’ 거리가 되는구나. 물론 이깟 트윗 하나가 사람의 마음이나 가치를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주면 얼마나 준다고,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트윗 하나만 보면 ‘트윗 하나’지만, 키와 체중의 숫자 기준은 언제 어디서나 여성들을 평생 옭아왔다. 표준 체중과 미용 체중은 달라, 이 키에 딱 예쁜 체중은 n키로야, 연예인들은 50키로 안 넘어, 네 키 정도면 n키로면 적당하지, n키로 이상 넘어가면 확 쪄보여, 이런 별 것 아닌 것 같은 물방울이 떨어지고 또 떨어져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 


정리하자면 175cm 70kg 언저리에 있는 비슷한 키와 체중을 가진 여성들이 저런 별 것 아닌 트윗을 보고 다시금 자기검열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스럽다. 근육이 많아서, 혹은 체지방율이 높아서, 저 트윗을 보고 “맞아, 나도 70kg인데 날씬하단 소리 들어.” 하며 안심해야 하고, “헉 나도 175cm에 70kg인데 난 왜 이렇게 뚱뚱한 것 같지?” 하며 불안해야 하는가. 이 사회는 언제까지 여성들이 숫자에 본인을 얽매어 가며 거울에 몸을 비추어 보고 체중계의 숫자에 연연하도록 만들 것인가. 이 의사는 다름 아닌 바로 그것에 대해 집중하여 인지해야 할 것이다. 본인이 여성들을 365일 다이어트로 내모는 남성적 사회의 커다란 바퀴를 조금 움직이게 한 작은 힘이었다고. 

참고로 저 의사가 저렇게까지 “특정 인물을 지칭한 게 아닌데 도대체 어떤 문제가 되느냐”고 목놓아 외치고 있는 그 ‘개인정보’ 부분 말인데, 법률상에서 명시하고 있는 개인정보/신상의 범위로 미루어 보자면 저 트윗은 ‘환자의 개인정보를 게시하여’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전혀 없다. (물론 본인의 신상 등으로 병원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어쨌든 해당 트윗을 작성한 의사는 더 이상 쓸데없이 본인 방어에 힘 쓰지 말고 자아성찰적인 태도를 갖고 여성주의적 시각을 길러 사회를 돌아보고 본인을 반성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01. 유유상종과 동상이몽 : 조화로운 페미니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