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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Mieum Jan 23. 2022

03. 당신은 사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전제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답은 나오기 마련이다



 얼마 전 지인과 한국 사회의 비만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일이 있었다. 한국 전체 인구의 비만율은 OECD 국가 가운데서도 최하위권에 속할 정도로 국민들이 날씬한 나라지만, 흥미로운 점은 젠더 간 격차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크게 차이 난다는 점이었다. 한국 남성의 비만율은 41% 정도인데 이에 반해 한국 여성의 비만율은 약 23% 정도에 불과하다. 생물학적으로 여성 신체보다 근육이 더 잘 붙고 지방이 붙지 않는 체질임에도 남성들의 비만율이 이렇게나 높은 것에는 거시적인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가 대화에서 이 통계로써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단 하나, “한국 여성들이 이렇게나 마름을 강요받고 뚱뚱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을 받고 산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엉뚱했다. “그런데 여자도 결국 4명 중 1명은 비만이라는 거네? 여자라고 다 다이어트 강박이 심한건 아니란 거잖아.” 


 한참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로 씨름을 했다. 결국 요지는 완벽하게 빗나갔고 결국에는 쓸데없는 주제로까지 번져나가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여기 저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번져 돌고 돌긴 했지만 그 지인의 주장 핵심은 결국 이것이었다. 

“너는 왜 이렇게 남녀를 갈라서 싸움을 붙이는 것을 좋아하냐. 그런 틀에 박힌 생각을 버려라. 그냥 사람마다 모두 다른 거다. 여성의 비만율이 23% 라는 건, 결국 그렇게 ‘날씬함’을 강요받는 여성들이더라도 4~5명 중 1명은 그 압박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과체중이라는 거 아니냐.” 


 여성주의, 페미니즘 하면 뭔가 개인 하나 하나를 뜯어 고쳐야 하는 사상이라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이 꽤 많다. 저 지인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조금만 생각할 줄 알던 사람들이라면 사실은 본인의 말 안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사회 운동이며 사회는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모든 생각과 움직임을 바꾸는 것이 사회 운동의 목표가 아니다. 거시적으로 생각해 보면 답이 바로 나올 부분도 개인과 개인으로만 시선을 돌리면 바로 누구나 궤변을 펼칠 수 있다. 


- 이미 여자가 대통령도 한 마당에 무슨 여성 인권이 낮아? 

- 남존여비는 옛날 얘기야, 요즘은 여자들도 다 마음만 먹으면 남자보다도 높아질 수 있는 세상이야 

- 요즘은 여자들도 화장 안하고 다닐 수 있다 

- 내가 아는 어떤 집은 남편이 꾸미고 다니고 아내가 하나도 안 꾸미고 다니더라 

- 내가 아는 어떤 남자애는 여자보다도 글씨를 예쁘게 잘 쓴다 

- 사회가 개인을 밀실에 가둬 놓고, 여자는 이렇게 남자는 이렇게 하라고 사상을 주입하기라도 한단 말이냐 

- 남녀 가르지 마라, 그냥 개개인의 차이다 


 위 문장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답은 나오기 마련이다. 남성이 대통령인 것이 디폴트인 사회, 여성은 마음 먹지 않으면 남성보다 높아지기 힘든 사회, 여성은 화장 등 꾸밈노동을 하는 것이 디폴트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은 사회기 때문에 저런 말들이 성립 가능한 것 아닐까? 


 ‘젠더’라는 것이 사회에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확률게임과 비슷하다. 또한 개인이 속해 있는 문화와 사상, 언어에서 자유롭기 힘들듯 젠더 역시 이 공기중에 촘촘히 짜여져 개인에게 매 순간마다 영향을 미친다.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특정 성별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지정을 받으며 해당 젠더에 따라 제약을 받거나 젠더역할을 강요받고, 취향과 말투, 성격, 성향, 직업, 사고 방식, 앉아 있는 자세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만약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무조건적인 반발심에, 나는 사회의 영향에 굴복하는 개인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찬찬히 모든 주변의 것들과 자기 자신의 사고방식 회로를 돌아보기를 추천한다. 


 사실 이 정도의 영향력이라면 “사회라는 게 개인을 가둬놓고 특정 사상을 가지라고 주입하는 것도 아닌데” 라는 말의 재평가도 시급한 수준이지 않을까. 남녀 나눠서 생각하지 마라, 다 사람 차이다, 라는 말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울어진 젠더 불평등에 대해 가시화하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젠더롤을 개인에게 강요하고 있는 사회에게 해야 할 말이 아닐까. 


 학교 다닐 때 사회/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뉴스를 보고 살고, 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닌 사람들이 유독 성차별과 젠더에 대해 말할 때 갑자기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일까.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기득권자로서든 약자로서든 가장 당사자성이 깊게 관여된 주제이고, 내가 뭔가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불편함이 생기고,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통째로 부정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성의 경우 굉장히 아무 생각 없이 해오던 언행들이 특정 젠더 집단에게는 폭력적인 가해일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하는 것을 의미할테고, 여성의 경우 별 생각 없이 듣고 말하고 일상적으로 해 온 행동들이 사회 구조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에 매우 자연스럽게 해 온 것이었다는 깨달음의 작업을 의미한다. 생각보다 본인의 한 평생을 새로운 관점으로 톺아보는 과정은 괴롭고 고통스럽다. 부끄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을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고 비유한다. 


 그렇기에 똑바로 바라봤을 때 피곤하고 불편해진다는 것,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모른 척 하는 것은 자유일지는 몰라도 결국 인지부조화를 피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며,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세상은 여전히 ‘잘못 된’ 상태다. 언제든 고개를 들어 진실을 마주 볼 준비가 되어있는 당신은 사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용기를 내면 당신 한 사람도 딱 그 만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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