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평범한 존재들을 누가 '평범하지 않은 존재들'로 만들고 있는가
‘멀쩡한’ 드라마, 웹툰, 영화 주인공 캐릭터들이나 연예인을 왜 레즈비언으로, 게이로 패싱하냐는 말들이 많다. (저 ‘멀쩡한’의 의미는 대체 무엇인지도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스토리나 맥락상 퀴어적 모먼트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어떤 캐릭터/연예인을 퀴어로 패싱하는 것은 무례한 짓이다."
맥락 상 존재하지 않던 퀴어성을 짐작하는 것은 왜 무례한 짓일까? 왜 ‘게이가 아닐수도 있는 남자’를 게이로 모는 것은 무례한가? 여기에 상당히 궤변적인 흔한 답변은 다음과 같다.
“아니, 퀴어를 이성애자로 착각하는 것도 당연히 똑같이 무례한거지! 누구든! 성지향성을 잘못 짐작하면 무례한 거지!”
그러나 정말, 진심으로, 당신의 세상은 저렇게 중심을 지켜왔는지 묻고 싶다. 당신은 그 동안 이성애자임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어떠한 콘텐츠 속 주인공을 당연히 이성애자라 생각하며 지켜보지는 않았는가? 그냥 그것이 기본값 아니었는가? 당신은 어떤 캐릭터를 소비할 때 그 당사자의 성적 지향성을 정말로 ‘빈 칸’으로 두고 소비한 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세상엔 퀴어 수가 원래 별로 없고 머릿수 자체가 적으니까 이성애자를 기본값으로 두는 거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단지 머릿수가 적다고 해서 설명이 되는 부분이 아니다. 저 말에 따라 머릿수에 비례하려면 실제로 인구의 약 11% 정도라는 퀴어 인구에 최소한 비례하는 정도의 콘텐츠들이 존재했어야 하지 않는가. 게다가, 재벌들이나 정치인, 초능력자 등등은 우리 인구 중에 얼마나 차지한다고 그렇게 서사가 많겠는가.
또한 단순한 배제만 있었다면 말 그대로 ‘수가 적어서’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다만 퀴어서사 배제는 늘 혐오를 동반한다. GL, BL도 아니면서 ‘멀쩡히’ 퀴어적 모먼트 없이 잘 흘러가던 스토리에서 퀴어적 암시가 나왔을 때의 이를 지켜보던 대중의 반응은 늘 참담하다. 혐오적 발언은 물론이고 ‘갑자기 게이, 레즈가 튀어나오다니 개연성이 없다!’ 소리까지 듣는다. 전쟁영화나 우주영화 등 아무런 로맨스 맥락 없던 스토리에서 갑자기 이성애적 로맨스가 피어나는 것은 개연성 있고?
우리에게는 더 많은 퀴어 서사와 퀴어 캐릭터가 필요하다. 정상 규범은 더 깨져야 한다. ‘이러이러한 게 정상인데, 저건 그렇지 않네?’ 같은 생각이 사라지려면 기존의 정상값을 깨버려야 가능하다. 작품과 콘텐츠 속에서 더 많은 퀴어를 만나야 점차 대중들이 콘텐츠나 캐릭터를 소비할 때, 특정 복성이나 암시적 장치가 없는 한 해당 캐릭터의 성적 지향성을 ‘빈 칸’으로 둘 줄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속도는 매우 느리겠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퀴어들은 왜 ‘멀쩡한’ 캐릭터들을 퀴어 패싱하겠는가. 퀴어들은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와 서사가 너무 부족하다. 마치 세상에 수없이 넘쳐나던 남성서사 작품들 속에서 여자 아이들이 본인을 이입할 히어로물을 찾지 못하며 자랐듯이, 백인이 항상 주인공이고 흑인은 악당이나 조연으로만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계에서 흑인이 주인공이면 뭔가 ‘인종차별’ 이슈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영화라는 취급을 받듯이. 퀴어들 역시 그냥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더 많이 콘텐츠 속에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나 사실 레즈비언이야.” 라는 말에 머릿속에 ‘아, <아가씨>봐서 어떤 건지 알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색 블루>도 봤어.’ 라는 특정 모델이 떠오르지 않도록. 우리들은 더 많은 서사들이 필요하고, 더 평범해 질 필요가 있다.
덧붙여 그 캐릭터나 연예인들이 정말 성적지향성 ‘빈 칸’ 상태였더라면 헤테로 패싱이든 퀴어 패싱이든 무엇이 문제겠는가. 안 그래도 퀴어들은 이 퀴어혐오적인 세상 속에서 항상 비퀴어로 패싱 당하고, 비퀴어로 살아갈 것을 강요 받고 사는 것이 일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