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주댁민댕씨 Sep 02. 2021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

5년 전, 가끔 큰아이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알라딘이라는 중고서점에 가는 것을 즐겼었다.

생각보다 내가 찾는 책도 많았고 신간만 아니라면 볼 수 있는 책이 꽤 많았다.

그곳에서 책을 구경하고 종종 아이도 단행본 책 한 권씩을 사들도 왔었다.


하루는 아이가 책을 고르는 사이 평소처럼 진열된 책을 훑어보고 있었다.

'오늘부터 미니멀 라이프'라는 책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점 안에서 반을 넘게 읽었는데 아이가 고른 책과 함께 그 책도 구매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이 아주 조금은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미니멀 라이프를 검색해서 다음 읽을 책을 찾아보는 일도 많아졌다.


큰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 옷 입히는 재미에 빠져 내 옷과 남편의 옷을 조금씩 비우고 있었다.

물려받은 옷도 가득인데 그때그때 내가 맘에 드는 옷들까지 구매하다 보니 처음에는 수납장을 늘려보다가 점점 공간이 생기지 않자 그때부터 조금씩 비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는 언니가 한 번은 자신의 옷과 형부의 옷 거의 모두를 비우면서 "아이 옷 때문에 내 옷을 둘 공간이 없어! 그래서 버리는 거야.'

라고 말할 때만 해도 언니의 집이  정말 좁아서 그런가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언니의 집보다 조금 더 넓은 집에 사는 나도 차고 넘치는 옷 때문에 결국 큰아이가 태어나고 아이 옷이 늘어나니 내 옷을 비우는 일을 먼저 선택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내가 즐겨 입는 옷보다는 출산 전 직업의 특성상 출장 가서 산 옷들, 어울리지는 않지만 예쁘다며 산 옷들 그리고 샘플로 보관한 옷들이 반 정도 차지하다 보니 옷을 비우기란 어렵지 않았다. 복직 생각을 버리려 하다 보니 더욱 쉽게 정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생들에게 샘플로 보관하고 싶은 옷이나 갖고 싶은 옷은 챙겨 가져 가라고 했고 그 외에 내가 입지 않는 옷 순서로 비우기 시작했다.

집 앞에 수레를 밀며 파지를 줍던 할머니는 며칠 동안 두 대봉씩 헌 옷을 내놓는 나를 보시고는 내일도 또 와도 되냐고 물으실 정도로 매일 같이 옷을 비웠었다. 어디에 그리 수납을 잘해놓은 것인지 버릴 때마다 놀라는 건 나의 몫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은 어렵다는 옷부터 비우기를 시작하고 있어서 미니멀 라이프라는 타이틀이 꽤나 의욕적으로 받아들여진 듯하다.

뚜렷하게 '나 미니멀 라이프야!'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하나의 책을 시작으로 조금씩 나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신혼집에서 이사를 하면서도 옷은 꽤 많이 비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다른 건 그대로였다.


그쯤에 본 일본 드라마가 있었다.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라는 드라마였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상 속에 담긴 집안의 풍경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였는지 나에게는 무척 큰 자극이 되었다. 그 드라마 덕분에 더욱 비우기 욕구가 마구 솟아났던 것 같다.


아이가 한 명 더 늘어나다 보니 수납이 더 부족해진 것 역시 사실이었다. 가족이 네 명이 되면서 그다음으로 비운 것이 신발이었다.

옷만큼이나 신발을 좋아했기 때문에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들의 신발이 작은 신발장 속에 슈즈랙까지 넣어 수납을 하면서도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신발들은 결국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물건을 중심으로 비우기 시작한 것들의 현재가 지금의 나와 나의 집이 되었다.


막내인 쌍둥이 형제가 태어나고 정착한 지금의 우리 집은 내가 원하는 모습을 조금 더 갖춘 모습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내 옷이 가장 많고 내 신발이 가장 많고 내 가방이 가장 많다. 현실이 그러하다 보니 사실 우리 집에서 미니멀을 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다.

남편은 물건을 잘 버리지도 않지만 잘 사지도 않는 사람이다. 아이들이야 내 욕심으로 구매한 옷과 신발을 신고 다녔을 테고...

건조기를 집에 들인 이후로는 매일같이 입었던 옷을 세탁해 다시 넣어두다 보니 옷도 필요한 양만큼만 채우려고 한다.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마다 "애가 넷인데 짐이 왜 이렇게 없어요?" "어쩜 집이 이리 깨끗해?"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래도 꾸준히 미니멀에 관련된 책이나 혹은 사진들을 접하며 지금도 나는 노력 중이다.


"미니멀 라이프라며?"라는 질문에 가끔은 아주 뜨끔 하긴 하지만 미니멀 라이프로 살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나는 비우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초보운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