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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댁민댕씨 Sep 09. 2021

나의 첫 번째 독립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집 밖에서 생활해 본 적이 없다.

정말 애석하게도 사춘기 시절 가출 한번 한 적이 없었고, 무엇보다 집에서의 생활을 좋아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집순이가 아니다. 매일같이 집 밖에 나가 다니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집에서는 잠만 자다시피 하다 보니 직장인이 되어서도 집에 생활비 한 푼 보태지 않고 참 끈질기게도 부모님 옆을 지키고 있었다. 아니 부모님이 이 모지리 받아주고 계셨다.


독립적으로 내 집을 꾸려본 것은 결혼을 준비하며 만난 나와 내 남편의 첫 보금자리인 신혼집이었다.

신혼집을 구경도 못해보고 계약한 신부가 과연 또 있을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참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다.


일본으로 출장을 떠났을 때, 갑자기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갑자기 신혼집을 어머님과 알아보다 그만하면 가격도 괜찮고 깔끔하다며 전세 계약을 하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나는 집을 구하는 경험 자체가 없다 보니 남편에게 맡긴 채 업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신혼집이 될 우리의 집을 떨리는 마음으로 구경하러 갔었는데 현관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욕실은 정말 살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닥이며 벽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다 생각을 했지만, 옛날에 장식해 놓은 옥 같은 느낌의 세면대와 변기 가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여 있었다.

유난히 크기도 했던 욕실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기가 참 힘들었다.

하지만 이미 계약은 했고 약간의 수리를 거쳐 그 집에서 우리의 첫 살림을 시작했다.


살림 장만도 가전제품 대리점 한 곳에 들러 냉장고와 세탁기 그리고 텔레비전을 주문했다.

가구도 가구대리점 한 곳만 딱 정해서 소파, 거실장, 장롱 두 짝 그리고 식탁을 주문했다.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긴 했지만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는 바람에 상견례 날 아침, 예식장에 들러 그 달에 식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찾아보고 예약하고 저녁에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날짜를 통보하는 것을 시작으로 상견례를 했을 정도로 급하게 이루어졌다.

그 덕에 싸우거나 서로 지칠 일은 없었지만 급하게 끝내 놓은 현실이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집에서 쓸 식기는 어머님이 사놓고 안 쓰신다는 코렐 8인 식기 세트를 박스채 들고 왔다.

조리도구, 수저세트와 컵 종류는 가구를 구입한 포인트로 구매한 제품을 사용하고

냄비나 프라이팬은 가전제품 대리점에서 혼수 장만하는 고객들에게 서비스로 주는 것을 받아왔다.

이것저것 채우다 보니 우리의 살림도 어엿한 모습을 갖춰갔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나도 복직을 하면서 살림에 크게 관심 갖지 않고 살았던 터라 살림살이에는 남편이 오히려 더 관심 가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둘째를 출산하고는 자연스럽게 집에서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살림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챙기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졌다.

아무래도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주변 엄마들과의 교류가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고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때 마침 시작한 SNS는 더 큰 힘이 되어 살림살이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내 취향이 묻어나는 물건들을 구매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크게 변화를 주기는 힘들었다. 어쨌든 지금 잘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도 있고 아까워 꽁꽁 쥐고 있는 물건들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세 번째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내 물건, 내 살림에 조금 더 욕심을 내 보았다.


좋아하는 물건과 아직 쓸만한 물건들을 다시 챙겨 배치하기로 하고, 처분하고 싶은 물건들은 조금의 미련도 없이 없애고, 부족한 공간은 또 채워가며 나의 집을 꾸몄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내가 어머님께 받았던 코렐 식기를 버리고 싶다고 말씀드렸었다.

어머님은 아까우셨는지 이사할 때 다시 시댁으로 가지고 가셨다.

그리고 나는 그레이 컬러의 그릇을 풀세트로 구매했다. 이번에는 6인용으로!

딱 원하는 디자인으로 필요한 만큼 구매했다.


신혼살림으로 샀던 전자제품들은 세탁기만 바꾸고 나머지는 그대로 사용 중이다.


신혼 때 큰돈을 주고 구매했던 소파, 거실장, 식탁, 장롱까지 모두 다 버리고 왔다.

아이 둘 키우는 동안 소파 다리가 망가져 수리해 다시 사용하기도 했지만, 결국 버티지 못해 제 다리가 아닌 다리로 교체해 보내준 덕분에 디자인이 정말 마음에 안 들기도 했지만 물티슈로 닦아내기 바빴던 가죽소파는 어느덧 벗겨지고 바래져 버리고 와야 했다.

그 덕에 소파를 안 놓고 싶었는데 쌍둥이 형제를 출산해 키우는 동안 집에서 함께 육아를 동참해 주셨던 어머님께서 소파 없이는 생활이 힘들다고 하셔 급하게 구매한 패브릭 소파가 지금은 자리 잡고 있다.


거실장은 아이들 둘 키우다 보니 오만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고 , 모서리 보호대를 붙였다 떼어 놓은 흔적들에 문짝은 고장이 나서 잘 닫히지 않거나 힘주고 열어야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결국 버리고 가자고 남편과 상의했었다.


이번 집에는 드레스룸이 있다 보니 장롱도 굳이 가져갈 필요도 없었다. 더군다나 잘 모르는 동안 안쪽 벽면에 곰팡이가 생기고 있었으니 버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미니멀한다고 옷 가짓수도 줄이다 보니 헹거는 시댁으로 보내고 플라스틱 수납박스만 현재의 집으로 들고 들어오게 되었다.


식탁은 이미 두 번째 집부터 놓을 공간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시 할머님 댁으로 옮겨 간지 오래전이었다.

덕분에 명절 때면 주방에 음식들과 그릇들 올려놓을 공간이 생겨 조금은 편해지기도 했었다.

나는 그 어떤 가구보다 식탁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래서 세 번째의 집으로 이사할 때는 내가 원하던 화이트 컬러의 원형의 식탁으로 구매해 놓고 한 달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보니 사실 나의 첫 독립은 결혼을 하며 남편과 함께 한 첫 집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집도 살림들도 내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은 반 정도일 뿐이랄까, 뭔가 내 살림이라는 느낌이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독립을 경험하고 내가 선택한 물건과 공간을 함께 하며 완성된 지금의 집이야 말로 나의 집이고, 나의 살림이고, 나의 물건들이라는 느낌이 든다.


지금도 20대에 자취생활 한번 못 해본 것에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의 경험이 조금은 더 있었다면 내 집과 내 살림에 조금은 보템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나이 40이 되어서야 나의 첫 독립을 외쳐본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 다운 삶으로 나의 인생을 채워가려 한다. 오늘도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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