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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Aug 28. 2020

요가하는 해파리 22

청학동 이야기, 셋

하늘의 흰 구름을 보고 있으면, 늘 신기한 사실이 하나 있다. 꼭 생김새는 마치 만지면 두툼하니 질감 있게 생겼는데 진짜로 만지면 만질 수 없다는 것이, 나는 정말 신기하다. 미스테리야, 수수께기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서당 툇마루에 앉아 있다. 여름의 하늘, 늦은 오전이라 햇볕은 약간 따끈하고, 서당에서는 예사들이 사자소학을 외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제 사자소학 따위는 욀 필요가 없는 몸이라 지금 몹시 신나있다. 맴맴 매미의 뜨거운 소리.     


  “아우 좋다.”     


벌러덩 뒤로 누워 기지개를 폈다. 남색 치마 아래로 쭉 뻗은 하양 고무신, 무지개 색깔 양말, 싸늘한 마루가 등에 닿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그러고 있는데, 거기에 계셨습니까? 라는 목소리에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이 훈도님이었다.      


안 훈도님과 달리 머리가 짧은 이 훈도님은 항상 머리에 두건 같은 것을 쓰고 다니고, 눈꼬리 약간 처져있고, 눈두덩이는 약간 도톰하다. 개구리다. 속으로 말하며 나는 개구리를 닮은 이 훈도님의 눈을 보며 꾸벅 인사를 드렸다. 이 훈도님은 내가 할 일이 있다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 세상에 공짜로 놀고먹는 일이란 절대 없는 법이지. 나는 군말하지 않고 이 훈도 님의 차에 올라탔다.     


지리산을 끼고 굽이굽이 이어진 찻길은 무시무시하다. 마치 뱀이 똬리를 튼 모양 같은 게 차를 타고 이곳을 지나가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된달까?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만다. 이 훈도님은 운전을 참 잘하신다. 이런 찻길을 속도도 줄이는 법 없이 핸들을 꺾어대는 게 거침없는 솜씨였다. 이러다 삐끗하여 차가 전복되거나 튕겨 나가는 상상을 하며 나는 속으로 바들바들 떨었지만, 어쩐지 흥분이 되기도 해서 조금은 즐기기는 마음으로 바깥 풍경을 본다. 쉭쉭 지나가는 예쁜 풍경, 풍경을 감상하며 본능적으로 나도 모르게 지붕에 달린 안전 손잡이에 손이 갔다.      


무섭습니까? 그런 내 꼴을 힐끗 보는 이 훈도님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 있다. 네, 그런데 재밌어요. 나는 솔직하게 말한다. 하하하, 그래요? 말하고는 속도를 올리면서, 이 훈도님은 시원스럽게 핸들을 꺾었고, 내 몸은 기우뚱 옆으로 기울었다.      


  “왈왈!”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제 2서당이었다. 내가 지내기로 한 청학동의 그 서당은 또 서당 3곳으로 나누어졌는데, 제 1서당, 제 2서당, 제 3서당, 이렇게 분류가 된다. 그 가운데 제 2서당의 보수가 필요하여 이 훈도님께서 나를 데리고 여기로 오신 것이다. 조그맣고 배가 토실토실한 멍멍이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짖어대었다. 생김생김이 귀엽긴 한데 나를 별로 반기는 눈치는 아닌 것 같아 무시하고 이 훈도님을 따라 서당 안으로 들어갔다. 찬 바닥, 오래된 공기의 냄새가 났다.      


  “어? 안녕하세요?”     


그곳에는 여자 예사 하나, 남자 예사 하나가 이미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남자 예사 하나는 대충 아는 얼굴이고, 여자 예사는 나보다 언니였는데 나와 같이 사진 찍는 작업을 하기로 한 언니였다. 오전 일찍부터 어디 가셨나 했더니 여기 와 있던 것이었다. 조그맣고 하얀 얼굴에 안경을 쓴, 어쩐지 깐깐하고 고지식하고 성실한 부류 같은 인상이었다.      


  “정말 무시무시하네요.”     


오늘 이거 다 끝내야 합니다. 잔뜩 겁먹은 내 반응을 보고 도망갈 생각일랑 말라는 의미를 담아 이 훈도님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오늘 할 일은 도배였는데 당연히 나는 그런 일은 전혀 해 본 적이 없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벽지가 뜯어져 있는 사면의 벽만 쳐다보고 있는데 나머지 두 예사는 척척 알아서 할 일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처음이 아닌 듯했다. 풀이 가득 담긴 통, 둘둘 말려져 있는 새 벽지,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면장갑을 끼는데 이 훈도님이 음악을 틀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CD 플레이었는지 MP3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노래가 희한해서 나는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처음 듣는다던 그 노래는,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구요.

저녁에 우는 새는 임이 그리워 운다.

너영나영 두리둥실 놀구요.

낮이낮이나 밤이밤이나 상사랑이로구나.    

 

호박은 늙으면 맛이나 좋구요.

사랑이 늙으면 무엇에나 쓰나.

너영나영 두리둥실 놀구요.

낮이낮이나 밤이밤이나 상사랑이로구나.     


이런 노래였다. 처음 듣고는, 신기한 노래네,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렇게 가만히 가사를 듣다가, 백록담 올라갈 땐 누이동생 하더니 한라산 올라가니 신랑각시가 된다, 라는 구절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노래 좋지요? 그런 내 모습을 봤는지 이 훈도님이 그렇게 말했다. 무슨 노래냐고 물었더니 제목이 ‘너영나영’이라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라 했다. 우리는 그날 이 노래를 노동요 삼아 일하는 내내 들어야 했다.      


벽지에 풀을 바르고 그것을 벽에 붙이고, 서툴지만 나는 열심히 작업에 참여했다. 하면서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남자 예사는 자기 여자친구가 연상이라고 했는데, 생김새는 어째 샌님 같은 게 누나를 좋아하는 취향이라니, 의외의 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조금 놀랐다. 언니는, 자기는 애니메이션 쪽을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그쪽으로 취직을 할 거라면서 가고 싶은 어떤 회사 이름을 댔는데, 구체적인 미래설계가 되어 있는 모습에 조금 감동하기도 했다.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를 너영나영 노동요, 뺨이며, 걷어붙인 소매며, 치마며, 맨살이란 맨살에 풀을 묻히고는 나는 흥얼흥얼 세 사람의 보조 역할을 척척 해냈다.      


  “그런 양말은 어디서 나요?”     


내 양말을 보는 이 훈도님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원래는 주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나무라는 대신 그렇게 말해서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흰 양말을 신어야 한다는 규정을 몰랐다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대려다가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쁘죠? 예뻐서 샀는데 이거 말고 더 있어요. 라고 말하고는 옆에서 쫑알쫑알 대기 시작했다. 쫑알쫑알하다가 나중에는 당이 떨어져 과자, 아이스크림, 초콜릿 같은 게 무척이나 먹고 싶어졌는데, 여기는 깡촌이나 마찬가지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며칠에 한 번, 안 훈도님이나 이 훈도님이 차를 타고 시장을 봐오시는 것 같긴 하지만 청학동에서 몰래 군것질이라니 들키면 혼날 일이었다. 나는 단 것을 무지 좋아한다. 밥은 안 먹어도 과자는 안 먹으면 몸이 아픈 사람이란 말이다.      


초콜릿, 과자, 아이스크림, 케이크, 카페라테, 팥빙수. 아, 격하게 먹고 싶다. 그런데 참아야 한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죽음을 무릅쓰고 챙겨 올걸. 곧 아이들이 오면, 물론 소지품 검사를 해서 압수를 당하겠지만, 그래도 걔 중에는 교묘하게 숨기고 있는 얘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발견하면 하나 달라고 할까? 예사님의 명령으로서. 이런 못난 생각을 하며 손은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계속 생각했다. 어디 굴러다니는 수건도 몇 장 입수 해야 하고 간식거리도 좀 얻었으면 좋겠고, 나 원 참.      

  “훈도님 언제 또 시장에 가세요?”      

  “왜요?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네, 팥빙수요.”     


살짝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 훈도님을 못 본 척하면서 나는 계속 내 말만 했다. 먹고 싶은 것들을 종류별로 쭈르륵 늘어놓으면서.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죄다 먹고 싶은데 여기는 아무것도 없고, 있어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규칙일 테고, 그래도 난 몰래 먹고 싶고, 안 먹으면 병이 날 테고 어쩌고저쩌고, 이 훈도님한테 신세 한탄을 했다. 가여운 내 처지를 호소하다가,     


  “엄마야!”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긴 치마는 취향이 아니라 입지 않는 옷인데 평소 안 입던 옷을 입고 걸으려니 이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난 내 치마를 내 발로 밟고 넘어졌는데 넘어지면서 풀이 담긴 통을 발로 차 엎지르고만 것이었다. 콰당, 철푸덕, 바닥에 이마를 박고서 이대로 영영 땅으로 꺼져버리고 싶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했지만 그보다는 내가 사고를 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미안했다. 또, 일하면서 계속 먹는 소리나 했던 내 자신이 무지무지 한심했고. 멍청이. 바보 멍청이. 노동요, 쏟아진 풀의 냄새, 뺨에 닿은 찬 바닥의 기운을 느끼며 나는 일어날까 말까 망설였다.      


  “괜찮아요?”     


이 훈도님이 일으켜주셔서 송구하지만 부축을 받았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입도 떼지 못하고 이 훈도님의 처분을 기다렸다. 마무리는 자기네들이 할 테니 가서 옷을 갈아입으라며, 제 1서당으로 데려다주려고 하는 이 훈도님의 눈은 싱글싱글 웃는 눈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혼자 갈 수 있어요. 걸어서 못 갈 거리는 아니라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한 번은 더 권할 줄 알았는데, 아 그래요? 그럼 그래요, 이렇게 말하면서 씩 웃는 이 훈도님을 조금 야속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오후, 뙤약볕, 나는 차를 타고 왔던 그 구불구불한 찻길을 걸어가기로 한다. 왈왈! 아까 그 멍멍이가 내가 어디에 가는 줄이나 알고 뒤를 따라왔다. 따라오든지 말든지 나는 무시하고 내 갈 길에만 신경썼다.      


  “어딜 그렇게 가? 그러다 도깨비가 채 갈라!”     


찻길 가장자리를 따라 쭉 가는데 봉고차 한 대가 서더니 창문이 내려갔다. 훈장님이었다. 훈장님은 내 꼴을 보시더니 이어서 말을 했다. 조심해야지, 도깨비가 데려가면 어쩌려고 예쁜 처녀가 혼자 이런 데를 겁 없이 가고 그래?     


  “나 같은 얘도 도깨비가 채 가나요?”     


나는 히히 웃었다. 왈왈! 따라오던 멍멍이가 훈장님을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길가에는 강아지풀이 엄청 많았고 내 손에도 강아지풀 하나가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렸다. 불어오는 귀여운 바람. 훈장님이 씩 웃었다.      


  “타!”     


라고 명하시는 훈장님은 박력 있고 멋졌다. 나는 또 히히 웃으면서 차 문을 열고 냉큼 올라탔다. 낑낑대는 소리가 나서 보니, 멍멍이가 나도 태워 달라고 조르며 꼬리를 흔들었다. 치, 아깐 그렇게 짖어대더니. 너는 너네 집에 가. 팩 고개를 돌렸더니 왈왈하고 싫다고 반항을 했다. 참 성가신 녀석이네. 귀여워서 봐준다. 나는 멍멍이를 안아 무릎에 앉혔다. 부웅 하고 봉고차가 출발한다.      


훈장님도 이 훈도님 못지않은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여기 청학동 사람들은 다 그런가 보다. 핸들을 꺾는 솜씨가 역시 달라도 남다르다. 조금은 무섭지만 무지 신나는 청학동 지리산 길, 옆으로 보이는 푸르른 산, 산, 산, 그리고 푸근한 하늘. 이미 봤던 경치지만 다시 봐도 멋졌고, 또 봐도 멋질 것이란 것을 나는 안다. 멋지다. 말하면서 나는 지붕에 달린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무릎에는 멍멍이, 여태 잘만 깨방정을 떨더니 살짝 겁을 먹었는지 주눅 든 꼴이 어째 얌전했다. 그 꼴이 우스워 나는 또 히히 웃었다.      


저어-기, 저기에 서당이 보였다. 서당에 도착하면 손빨래를 해야지. 하고 나면 마당에 있는 빨랫줄에 널어 햇볕에 말리고, 그리고 한숨 낮잠을 자야지. 안 훈도님, 이 훈도님 몰래몰래.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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