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 이야기, 하나
속세가 싫증 나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큰 뜻을 품고 그랬던 것도 아니었고. 아니었는데 쭉-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저 깊고 깊은 지리산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산이라면 우리 집 근처 관악산이 전부인 내가, 그랬던 적이 있었더랬다. 그게 십 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러니까,
“청학동이라고 들어는 봤니?”
거기에 가면 그곳은 좋은 데고 갔다 오면 더 좋을 것이라는, 사촌 언니의 꼬임이 있었다. 언니는 그곳에 이미 여러 번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 특별히 나에게 기회를 주겠다며 후후 웃었다. 푹푹 찌는 여름, 에어컨도 없는 내 방, 늘 빈둥빈둥이 일상이었던 나는 그럴까? 고개를 갸우뚱했다. 가서 뭐 하는데? 나는 물었고, 언니는, 가서 아이들 봐주고 가르치고 뭐 그렇고 그렇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 말들을 흘려들으며 “그래, 알았어.”청학동이라니, 어쩐지 두근두근해져서 당장에 가방을 쌌다.
그렇게 나는 혼자 지리산 청학동으로 들어갔다. 내 가방은 네모나고 노란색이고, 거기 가면 있을 것은 다 있다는 언니의 말을 믿고 정말 최소한으로만 짐을 쌌다. 어리버리, 언니가 알려준 주소대로 어떤 장소에 도착하니 거기에는 이미 몇몇 사람들이 와있었다. 다들 인근에 있는 어느 대학의, 어느 대학의, 무슨 무슨 동아리에 속해있다고 했고, 그 동아리란 사물놀이, 다도와 같은 데였다. 죄다 청학동에 오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칠만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란 것이다.
“서울에서요?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여자애 하나가 그렇게 물으면서 청학동에 온다는 것은 꽤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나는 사촌 언니가 도예를 전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동시에 나는 여기에 전혀 쓸만한 재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짝 주눅이 들었지만, “사촌 언니가 여길 잘 알아요.”어떻게든 되겠지 뭐, 이런 심정으로 씩 웃고 말았다. 조금 있으니까 머리를 길게 땋은 도령 같은 남자가 하나 우리를 데리러 왔고, 그는 자기가‘안 훈도’라고 소개했다. 훈도란, 청학동 직급 같은 것인데 ‘훈장’ 다음이 ‘훈도’, 다음이 ‘훈사’마지막이 ‘예사’라고 한다. 나는 청학동 ‘예사’의 신분으로 온 것이다. “네가 미희 사촌 동생이구나?”그가 나를 알아봤고 나는 꾸벅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며, 저 머리카락은 누가 땋아주는 걸까? 안 훈도님의 길게 땋은 머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같이 온 사람들은 다들 처음부터 알고 지낸 무리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보기에 아무 재주도 없이 홀로 온 서울깍쟁이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다. 게다가 나는 붙임성 있는 성격도 아니었고, 친구를 만드는 법에도 서투른 사람이었다. 패기 있게 입산했지만 막상 무리 속에 끼어들려고 하니 그게 쉽지가 않았다. 싱글싱글 말을 붙여본다고 붙여보지만 어쩐지 느껴지는 벽에 약간은 쓸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었는데, 혼자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울이라고 해요.”
그 아인, 자기 이름이 다울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여기 청학동에 있는 서당에서 살았었고, 지금은 살고 있진 않지만 이번에 방학을 맞이해 이렇게 ‘예사’로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예전에 살았던 서당에 인사를 갈 건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내게 제안을 했다. 청학동 첫날이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려면 그전에 우리도 교육이 필요하고 이런저런 준비가 필요했던 기간이었다. 아직 입산하지 예사들이 있었고,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다울이를 졸졸 따라나섰다.
여름 하늘 밑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등성이. 산의 초록이 말도 못 하게 무성했다. 크고 두툼한 구름, 매미 소리, 강아지풀, 나비, 햇볕은 쨍했지만 스치는 바람이 시원했다. 다울이를 따라 들어간 서당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다. 바삭바삭한 햇살, 기다란 빨랫줄에는 흰색 남색 검은색 부드러운 옷감들이 걸려있고, 우리가 들어서자 발발이 한 마리가 왈왈하고 짖어댔다.
“안녕하세요.”
서당 예절이라는 것이 뭐 특별한 게 있을까? 나는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의범절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다울이가 하는 행동을 보고 따라 하려고 했다. 눈치를 살피며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는 훈장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앉았는데 다짜고짜 훈장님이 떽! 하고 호통을 치셨다. 어라? 이제 막 간단한 인사 하나 했을 뿐인데.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다울이를 쳐다보았다. 다울이는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훈장님은 우리 둘에게 화가 난 것인데 왜 화가 나셨냐면,
“신체발부 수지불모라 했다.”
훈장님의 우리의 옷차림이 못마땅하셨다. 자고로, 신체와 머리카락은 부모님이 주신 것이라 하여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데 우리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의 차림새를 보라 하셨다. 자기는 그 뜻을 받아들여 이 무더운 한여름에도 긴 옷을 입어 살이 보이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너희는 어째서 이런 해괴망측한 꼴을 하고 있냐고 하셨다. 훈장님이 입은 의복, 머리에 쓴 정좌관. 호통은 무서웠지만 나는 훈장님의 차림새가 오히려 이해가 안 갔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고개를 푹 숙이고 사죄를 했다. 속으로 나는 억울했다. 다울이도 나도, 핫팬츠에 끈 소매를 입은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반소매 여름옷이었다. 뭐, 다울이가 입은 바지는 통이 넓고 무늬가 조금 요란하긴 했지만 그래도 길이는 긴 것이 발목까지 왔다. 게다가 여름이었다. 푹푹 찌는 날씨에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뻘뻘 나는 그런 계절이란 말이다. 그리고 또, 서당에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지 않은가?
어르신을 앞에 두고 이러면 안 되지만 대들고 싶은 마음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이것은 반 팔과 반바지라는 획기적인 발명품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뭐, 소중하면 다 꽁꽁 싸매놔야 하나? 소중하다고 죄다 감추면 욕심쟁이게? 물론 훈장님은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 아니었겠지만, 나는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가운데 소중한 꿀단지를 꽁꽁 숨겨놓고 자기만 먹었다는 훈장님 이야기를 떠올리며 속으로 흥! 했다. 왈왈!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저놈의 발발이 시키.
한참을 잔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기가 좍 빨린 채 나올 수가 있었다. 다울이랑 어떤 아주머니가 도란도란 수다를 떠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고, 아까 짖어대던 발발이를 좀 째려봐주고, 나는 다울이와 함께 우리가 지내기로 한 서당으로 돌아왔다. 다울이는 곧 있으면 남자친구도 여기에 올 것이라고 했다. 어릴 때 우리는 서당에서 만났다면서.
“좋겠다. 남자친구.”
서당에서 만난 사이라니, 어쩐지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청학동 생활이 시작이었다. 내가 청학동이라... 멍하니 받은 옷가지들을 보았다. 빨간 댕기, 하양 고무신, 내가 받은 개량 한복은 위에는 흰색 아래는 남색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내일 신을 양말을 꺼냈다. 알록달록한 무지개 색깔에 줄무늬 양말이었다. 그 양말을 보고, 여기서는 흰 양말만 신을 수 있다고 말하는 다울이는 또 난감한 얼굴을 했다.
“응? 그래? 몰랐는데.”
정말 몰랐기에 약간 당황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나는 옷가지들을 정리했다. 이제 씻으려고 했는데 아차, 수건을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도 가져오지 않은 까닭은, 분명 사촌 언니가 거기 가면 다 있다고 했다. 수건 같은 것은 다 있다고 오래 있을 건데 괜히 챙길 필요 없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내 짐은 정말 적었다. 오죽하면 같이 입산한 사람들이, 짐이 이게 다예요? 라고 물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수건이 있기는 무슨... 나중에 만난 언니한테 따졌더니, “얘들이 오면 빨랫거리가 산더미에다가 막 섞여서 잃어버리기 일쑤인데 대충 그중에서 아무거나 쓰면 되지 뭘 그러니?”이랬었다. 나 원 참. 아무튼, 그 얘긴 아주 한참 뒤에 일이고 그때 나는 언니가 무지 원망스러웠다. 다들 수건 한 장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거기서 염치없이 빌려달라고 할 용기는 없었기에 나는 머리를 굴렸다.
“에라이 모르겠다.”
나는 반 팔 티셔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오늘부터 이게 내 수건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뭐든 몸의 물기만 닦아내면 그만인 것이다. 후후. 저녁나절, 하늘은 보라색이고 아랫부분에 주홍빛 노을이 기다랗게 깔려있었다. 바람이 상쾌했다. 내일부터는 진짜로 청학동 생활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