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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 Lee Apr 03. 2020

#18. 싱가포르 6:맥리치 트레일과 트리 탑 웤

길 위의 동반자와 함께 한 트래킹

윈저 네이춰 파크에서 만난 워싱턴 여학생 

오늘은 날씨가 흐리다. 열대우림이 남아있을지 모르는 외곽 지역의 숲 windor nature park에 가 볼 예정이다.

다행히 비치로드 숙소에서 980번 버스를 타면 25분 만에 도착한다고 나온다. 도심을 거쳐 외곽으로 가는 동안 시내 중심가를 지나다가, 한적한 낮은 고급 주택 단지를 지난다. 다시 녹지대가 나타난 후 Opp Faber Gdn (정거장 ID: 53081)에서 하차한다. 골프장을 오른쪽에 끼고 큰길에서 접어들면 바로 왼쪽에 넓은 맥리치 주차장이 보인다. 내가 들어가고 있는 Central Catchment Nature Reserve의 안내문은 다음과 같다.

  =  Central Catchment Nature Reserve(중앙 집수 자연 보호 구역) =
싱가포르 중심가에 있는 큰 녹색 폐 역할을 한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자연보호 구역이며 2,000 헥타르 이상의 산림 면적을 차지한다. 생물 다양성의 관점에서 가장 풍부한 삼림의 일부가 서식하고 있다. 종류가 풍부한 원생 저지대 숲은, 싱가포르가 인간의 거주지로 발달하기 전에 한차례 번성했었다. 싱가포르는 드문 유형의 담수 습지 숲인데 현재 남아있는 부분이 이곳의 Nee Soon  습지 숲이다.
오늘날은 원래의 0.5 % 미만만 남아있어 이곳과 부킷 티마 자연보호 구역의 작은 부분에서만 찾을 수 있다.
기존 환경에 적합한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잘 계획된 자연 산책로에서 그 식물들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맥 리치 산책로는 맥 리치 저수지 주변의 숲을 감도는 오솔길과 산책로의 20 킬로미터에 연결되어 있다. 이 구역의 주요 명소로는 맥 리치의 두 최고 지점을 연결하는 250m의 현수교 '트리 탑 워크'와 7데크 전망대 인 '엘튼 타워'가 있다.
중앙 집수 자연보호 구역과 부킷 티마 자연보호 지구는 한때 인접한 숲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부킷 티마 고속도로 (BKE)가 1986 년에 건설된 뒤, 두 조각으로 나누어지고 나서 모든 것이 변화했다. 2013 년에 완성된 Eco-Link로 두 개의 보호 구역을 다시 연결하여 동물의 이동과 산림 식물의 종자 확산을 촉진하고 있다. 이 자연보호구역에서 맥 리치 산책과 트리 탑 워크 하이킹이 방문자에게 인기가 있다.

이 공원의 지도이다.

Central Catchment Nature Reserve

내가 오늘 걸을 코스는 '맥리치 트리 탑 워크 트레일 헤드(Macritchie Treetop Walk Trailhead)'코스를 통해 트리 탑 워크까지 가는 것이다. 이 코스 말고도 여러 코스들이 있다.

맥 리치 저수지 주변의 산책로를 걷거나 카약과 같은 액티비티를 즐기는 광경을 보러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열대 우림 내에 위치한 11킬로미터 맥 리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꼬리가 긴 마카크 원숭이, 다람쥐, 왕도마뱀, 박쥐 원숭이를 볼 수도 있고, 저수지에서 즐기는 카약과 카누 타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유로운 일정이 못되니 대신 울창한 숲 속 피톤 치트로 누적된 내 폐의 불순물이 희석되기를 기대하며, 비교적 짧은 코스인 Tree top bridge를 최종 목적지로 잡았다.


저만치 앞서 서양 여성이 걸어간다. 목적지가 같은 모양이다. 숲이 시작되는 입구에 들어서자 반대편에서 교사가 인솔한 한 무리 학생들이 숲 밖으로 나오고 있다.

야외학습 중인 학생들
'맥 리치 트리 탑 트레일 코스' 초입


길은 점차 좁아져 나뭇잎 무성한 숲길로 들어서고 있다. 더불어 사람의 모습도 뜸해진다. 약간 긴장이 되는 차에, 멧돼지를 조심하란 표지판이 눈에 띈다. 자동차 운전 중에 ‘낙석 조심’이란 글자 볼 때와 같은 기분이다.

‘조심한다고 막아질 일이 아닌데 어쩌란 말?’

홀로 나선 길이다 보니 금방 어디서라도 멧돼지가 튀어나올 것 같아 오싹한 감이 슬쩍 스친다. 이때 저만치 앞서 가던 여성이 뒤를 돌아본다. 아까 뒷모습만 보았던 서양 여성이었다.

“Hello!"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앞서던 그녀가 보조를 조정하여 동행 모드가 되었다. 멧돼지 출몰도 그렇고, 방향 잡기에 동행이 필요하던 차이다. 안내판 없는 갈림길이 몇 번 있으니 서로 의논하며 걷는다. 홀로 걷기 보담 훨씬 든든하다.

첫 대면에서 나누는 대화로, 출신지, 여정, 싱가포르의 인상 등을 얘기하다가 점차 각자의 근황을 털어놓게 되었다. 그녀는 워싱턴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 올해 26살이란다. 싱가포르 방문지 이곳저곳을 얘기하며 얼마를 걸었다.

아직 Macritchie Treetop Walk  출렁다리까지는 좀 더 가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그녀에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내 늦은 걸음속도가 그녀의 오늘 일정을 방해할 것 같기 때문이다. 단기 여행자의 하루 일정에 여유로운 코스가 없다는 걸 잘 아는 나로선, 그녀의 공원 트래킹 이후 오늘 일정이 맘에 쓰였다.

나는 타인 눈치 보는 면에선 최정상급 유형으로 아마도 A++의 혈액형일(그런 타입이 있다면) 것으로 추정, 저으기 피곤 삶이다.

어쨌거나 이 젊고 다리 긴 여성과 내가 보조를 맞춰 걷는 시간이 마냥 길어질 수는 없다.

몇 해 전, 무릎관절의 인대가 찢어졌던 나로선 얇아진 인대가 언제라도 다시 찢어질 수 있다는 주의를 들었기에 걸음을 최대한 천천히 걸어 무릎을 보호해야 한다. 여행지에서는 갑자기 못 걷게 되는 최악의 상황 예방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그나마 나쨩의 바호폭포는 여행 초기였고, 오늘은 여행 11일 차이니 더 주의해야 한다.

타국의 이 한적하고 무성한 낯선 숲길 동반을 벌써 끝내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 앞장서 가라는 말이 비장한 말투가 된다.      

" Go! After you. I must walk slowly."

그녀가 갑작스런 내 말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쳐다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자신의 원래 속도를 내는 것이다.

나로선 놀라는 그녀의 표정이 예상 외다. 기껏 생각해서 먼저 가랬는데 왜 생뚱한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다. 그녀 뒤를 따라 이제 천천히 내 속도로 걷는다. 간간히 운동하는 현지인들이 이 무더운 날에 조깅하며 스쳐가지만 사람은 없고 숲은 어디를 봐도 무성하다. 아마 선택한 코스는 내 걸음으로 왕복 2시간은 실히 넘을 성싶다.

저만치 멀어져 가는 그녀를 보며 아쉬움 반, 편해진 마음이 반 반이다.

그런데 벌써 한참 멀리 갔을 법한 그녀가 겨우 저만치 앞서서 안내판을 읽고 서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동행자 모드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까 먼저 가라던 내 말에 당황하던 표정이 떠올라서 보충 설명을 한다.

‘나는 무릎이 나빠서 빨리 걷지 못한다. 나하고 함께 걷다 보면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봐 먼저 가라고 한 거다. 그런데 한국인의 말투는 이런 경우에 사용해야 할 'Please'를 생략하는 통에 결례를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 영어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생기는 미숙한 화법인 거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그제야 활짝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한다.

딱히 바쁜 일정이 아니라서 상관없다는 거다. 배려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길이 250m의 트리 탑 워크. 지면에서  최고  높이가 25m라고 한다. 숲을  다리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걷는 내내 이야기를 나누며 트리 탑 워크에 도착했다.

트리 탑 워크 (TTW)은 싱가포르 지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현수교이다. 맥 리치의 두 최고 지점인 부킷 퍼스와 부킷 카랑을 연결한다. 숲에 서식하는 동식물 무리의 조감도를 제공한다.
보도의 길이는 약 250m이고 숲 바닥면으로부터의 높이가 다양하고, 최고 높이는 25m이다.
싱가포르인에게 자연 휴양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캐노피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접근이 어려워 많은 연구자들이 출입할 수 없었던 영역에서 이 다리는 조사와 식물의 식별 작업을 촉진하고 산림 생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해준다.
트리 탑 워크의 입구까지의 거리는 맥 리치 저수지 공원에서 약 4.5 km (도보 1.5-2 시간), 드라이브 주차장에서 2.5 km (45 분 -1 시간)이다. 오후 5시 폐장하므로 시간을 조정하여 입장해야 한다.

입장 부쓰에 원숭이가 앉아있다. 안내원에게 지나갈지를 물으니 '괜찮다'며 건너다. 흔히 나타나는 모양이다. 다리 위에서  숲을 내려다 보기는 케이블카 말고는 처음이다. 원시림을 기대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울창한 수목의 한가운데서  숲을 느껴보는 것으로도 만족스럽다.

다리를 건너니 나무 계단이 이어진다. 맥리치 저수지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욕심을 누르고 turn 한다.


돌아오는 길, 끝부분에서 코스를 조금 바꿨다. 가급적 숲의 이모저모를 더 다양하게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함께 걸은 약  2~3시간 동안, 우리는 쉬지 않고 온갖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2차 대전, 폴란드에 살았던 할머니를 비롯한 다국적 혈통의 가족사, 자신의 직업에 대한 고민, 자기가 키우는 반려묘에 비해 다른  '반려견주'들과의 입장 차이, 자신과 언니, 형부 각자의 취미 등에 관해 열정적으로 얘기한다. 나는 그녀의 다양한 주제를 따라가며 맞장구를 쳐준다.


미국학생과 쉬지 않고 얘기하며 때로 파안대소했다는 말  혹 괜찮은 수준 speaker로 내가 오해되지 않기를. 도무지 진척  영회 survial 최저 수준을 못면하고 있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개울 건널 때 징검다리를 골라 딛는 것처럼, 가능한 표현만 골라, 골라가며 얘기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전에는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터라 눈을 마주치기도 어색해했으나, 몇 번의 해외여행 덕분에 대화를 나누려는 시도를 할 만큼 용기도 생겼고 영어를 알아듣는 형편이 아주 조금 나아진 듯도 하다.

단, 이런 부족한 실력에 비해,  '발군의 보완점'이 있다면 누구하고라도 공동 화제를 잘 포착해낸다는 거다.

공감대를 찾으면 어떻든 대화는 이어나갈 수는 있다. 모국어 이야기 상대는 건성 반응이거나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때도 있지만, 외국인 대화상대는 최대한 집중해서 듣다 보니 서로가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국적이야 어떻든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것이야 말로, 모든 인간관계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누군가 말했다. '연애를 하는 것은 칭찬의 말을 듣기위해서'라고.

경청은 최대의 선물이고, 그 반대는 때때로 모욕감을 주기도 한다. 

내가 상대에게 의미있는 타자(Significant Other)인지의 판댠척도 중 중요한 하나가 '경청'이다.


아무튼 모처럼 실컷 웃으며 마음 속 깊은 얘기를 끄집어낸 날이고 ‘영어의 바다에서 미숙한 수영 자맥질’을 즐긴 시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집중해서 상대의 표현 의중을 알아내려는 시간이었음이 의미롭다.

큰길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아까부터 회색인 하늘이 거의 새카맣게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녀가 말한다.

“오늘 즐거웠어요. 저기 비구름 좀 보세요. 우린 운이 좋네요.”

“덕분에 나도 즐거웠어!”

정류장 방향이 반대라서 길 건너기 전에 헤어지는 아쉬움으로 서로 꼭 껴안고 볼을 비비며 작별한다.

건너편 정류장에 그녀가 탄 버스가 먼저 떠나간다. 멀리서 밀려오는 먹구름에 대비되니 싱가포르 주택들의 벽면 페이트 색깔은 더더욱 산뜻해져서, 강렬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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