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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 Lee May 05. 2020

#30. 말레카 4 :말레카 네덜란드 광장에서의 백일몽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네덜란드 건축물

스태더이스(The Stadthuys), 역사 및 민족학 박물관

언덕 위 세인트 폴 교회에서 비탈진 길을 내려오자니 아래쪽에 붉은 건물군이 보인다. 여러 번 지나친 네덜란드 광장으로 뻗어있는 쟐란 코타 거리에 집중되어 있는 이 붉은 건물군은 주로  네덜란드 식민시절 건축물들이다.  

수령을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나무들을 앞에 두고 하늘색 목재 창틀이 있는 건물, 스태더이스(The Stadthuys)가 언덕에 살짝 걸쳐 자리 잡고 있다. 

1650년에 네덜란드 총독 관저로 지어졌으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네덜란드 양식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말레카가 영국의 지배하에 놓이는 1826년 12월 7일 이 후로는 이 곳에 살았던 선교사에 의해 스태더이스 인접 장소에 영어 교육 기관이 세워졌다. 영국인 거주자에게 무상 교육을 제공하던 학교는 1871년에 말라카 고등학교로 개명, 영국 정부에 인계되었고, 193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갔다.


현재는 왕국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역사박물관으로 이용된다.

말라카 이전부터 식민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유물과 옷차림 그리고 네덜란드식 거실과 당시 사용했던 생활용품들도 볼 수 있다. 주말에는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다양한 군복 코스프레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유럽 열강들의 말레카 쟁탈전 역사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식민 시대 유물  전시공간이다.


한 무리의 나이 지긋한 유럽인 관광객들이 진지하게 들여다보느릿한 걸음으로 이동하고 있다.        

언덕에 지어진 스태더이스
네덜란드 광장에서 바라본 스태더이스와 왼쪽 시계탑


크라이스트 처치 (Christ Church)

건물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오면 빅토리아 여왕 재임 60주년 기념 분수대와 사각기둥 시계탑 건물이 보인다. 그 옆으로 네덜란드 광장에 면해 서있는 붉은색 교회 크라이스트 처치다.

크라이스트 처치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18세기에 세워졌다.

1741년 네덜란드의 말라카 점령 100주년 기념으로 새 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한 지 12년 후 완공되었다. 

교회 전면 벽에 쓰여있는 1753은 완공한 해를 나타낸다.

크라이스트 처치 파사드에 쓰여있는 완공 연도 1753
사진 맨 오른쪽 건물이 관광안내소

교회는 네덜란드식 건축기법을 도입해 네덜란드에서 공수해온 벽돌로, 이음쇠 없이 지어진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건물은  25m × 13m의 단순한 직사각형으로 배치되었고 12m 높이 천장은  각각 하나의 나무로 조각된 나무 기둥으로 되어있다.

지붕은 네덜란드 타일로 덮여 있으며, 현지 라테라이트 블록 (laterite, 석회암) 위에 네덜란드 벽돌벽을 높이고 중국 석고로 코팅했다.

교회 바닥에는 상선의 밸러스트(화물이 적어 배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 안전을 위하여 배 바닥에 싣는 중량물)로 사용되었던 화강암 블록이 깔려있다.


놋쇠 성경 받침대에는 요한복음의 첫 구절이 새겨져 있고 네덜란드 군인 및 현지인을 기념하는 200년 된 수공예 조각, 장식 촛대, 상패와 수공예 의자가 원형 그대로 보관돼 있다. 교회 바닥에는 유광 타일을 이용하여 이란의 서북부 지역인 알리 나인 사람의 필체(armenian script)로 '최후의 만찬'이라 새겨져 있으며, 벽에는 그 최후의 만찬이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다.

1824년 영국의 말라카 인수 후 본래의 네덜란드 창문은 축소되어, 장식되었고 베란다와 현관은 19세기 중반에 지어졌다.

원래는 흰색으로 칠해졌으나, 크라이스트 처치 교회와 이웃한 스태더이스 건물이 1911년에 빨간색으로 칠해지면서, 이 독특한 색채 구성은 이후 말라카 네덜란드 시대 건물의 특징이 되었다.

지금은 영국 성공회 소속 교회이다.      

크라이스트 처치 교회 내부

250년 넘는 역사가 말해주듯 교회 내부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중후하다. 나무 의자나 후면의 성가대석 같은 이층부는 언뜻 조촐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연륜의 깊이가 배어난다.

광장 쪽으로 열려있는 교회 파사드 쪽 문은 출입할 수 없도록 막혀있다.      

광장으로 열려있는 정문. 교회 그늘에서 쉬고 있는 트라이쇼 운전자들



교회 정문 너머 펼쳐진 네덜란드 광장으로,

머나먼 대항해를 마치고 지금 막 뭍에 오른 대항해 시대의 선두주자, 자만심 가득한 포르투갈 선원들이 들어온다.


뒤를 이어 17세기 중반부터 영국, 프랑스, 스페인과 해군 경쟁을 할 정도로 막강한 함대 전력을 갖추고 있었던 네덜란드 군이 등장한다.

그들은 유럽인들의 중국풍 문화, chinoiserie에 편승하여 막강한 경제권을 쥐어 줄 아시아 무역권을 장악하려고 따라온 승마복 모양 바지에 나막신을 신은 네덜란드 평민들을 동반하고 있다.


그다음으로 동인도회사를 통해 아시아에서 막강한 부를 긁어모은 '해가 지지 않는 땅'을 가진 나라의 신민들과 그의 가족들인 성공회 교인들이 한껏 차려입고 모여 와, 예배를 보기 위해  교회 의자를 빼곡히 채워 앉아 있다.


광장은 상인과 선원, 통역, 항만 노동자, 사람과 물류를 관리하는 관원, 뱃사람과 상인 상대의 유녀들로 넘쳐난다.


한낮의 더위를 교회 안에서 잠시 식히며 상상력을 동원해 보았다.

무역 트렌드가 바뀐 오늘은 향신료와 도자기, 견직물, 차를 은으로 바꿔가는 동서교역 중계무역 상인들 대신, 세계 유람에 나선 관광객들이 광장을 메우고 있다.


역사는 쉼 없이 돌고 있으니, 이 거리를 메운 저들도 다른 목적을 가진 다른 이들로 바뀔 터이다.


세인트 프란시스 사비에르 교회 (St.Francis Xavier's Church)

교회에서  시내 중심 쪽으로 300m만 가면 붉은색 건물이 끝나흰색 쌍둥이 첨탑 성당 나타난다.

동양의 사도, 성 프란시스 사비에르 신부가 이곳을 거쳐 간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가톨릭 교회이다.

1849년에 프랑스인 파베(Farvé) 신부가 예전 포르투갈 교회 부지에 건축했다. 1856년 알라 드 신부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현재의 사제관은 1874년에 건축되었다.

신 고딕 양식의 두 첨탑 높이가 다른 것은 지반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회는 1963년에 추가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프랑스 남부의 몽펠리에 (Montpellier)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 (Cathedral of St. Peter)을 모델로 한 것이며 이는 오래된 교회 건축 규정을 엄밀하게 따른 양식이라고 한다.

한동안 말레이 반도에서 파리 외방 전교회 MEP(Paris Foreign Missionary)가 세운 가장 큰 교회였었다고.

세인트 프란시스 사비에르 교회
사비에르 신부(1506-1552년)와 일본인 신자 야지로

성당 내부는 소박하지만 나름 정교하게 기획된 공간임을 보여다. 신자 몇 이서 기도 중이다. 현재도 미사가 집전되는 성당 역할을 하고 있다.

성당 마당에는 거리를 등진 공간에 성모상을 모시고 있다. 흔히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완벽한 조형미의 마리아상이 아닌 평범한 모습인 점이 오히려 어머니 마리아와의 거리감을 좁힌단 생각은 나만의 일지?

한편에는 사비에르 신부님과 일본인 신자 야지로의 동상이 서 있다. 이 동상으로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성당 앞을 지나는 시내버스 통행 거리와, 성당 담에 바짝 붙 지 큰 건물들로 인해서 160년 역사 지닌 성당 의 적요함을 느껴기 어렵게 한다.

성당에서 길 건너면 어제  미들버그 요새 앞에서 보던 유적 발굴터 연장선에 있는 ‘빅토리아 요새 발굴터’가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이전 말레카를 둘러싸고 있던 5각형의 성채 요새터 발굴 현장으로 보인다.

 그리고 야경 크루즈를 타고 지났던 말레카 강이 코 앞에서 흘러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하천보다 더 은 강폭임에도 바다와 연결된 강이라 수심 깊은지 많은 배들이 오다.

19세기에 찍은 사진에는 마을 앞까지 깊이 들어온 운송선에서 하역하는 인부들 모습이 담겨 있었다.

멀리 언덕 위 성당은 나무 숲에 포근히 들어앉아 있었고.

이렇게 내 나라 남의 나라 가리지않고, 옛사진을 보기만 하면 그 시대로 돌아가 현재 모습과 섞어가며 반추해보게 된다. 그러니 속절없는 나의 이 역마살은 어디에 연유하는지 가끔 '그것이 궁금하다.'

이 고목은 말레카의 역사를 다 지켜보았을까?
'역사 도시 말레카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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